희화화의 대상이었던 소크라테스
억변과 궤변이 창궐한 아테네에
대화·논박술로 참과 윤리 일깨워
소크라테스 스타일 핵심은 ‘빼기’
본질 아닌 것 제거, 본질·정의 드러내
삶과 사유방식 서구문명의 토대로
2500년전 아테네와 현재 판박이
날카로운 정으로 ‘가짜’ 쪼아내야
그리스의 천재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스물두 살 때인 기원전 423년에 쓴 ‘구름’이란 작품은 47세의 소크라테스를 풍자한 작품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자이자 변론술을 가르치는 소피스트로 그려진다.
내용은 이렇다. 한 농부가 전차 경주와 말에 빠진 아들이 진 빚을 감당하느라 파산지경에 이른다. 그는 채권자들을 말로 따돌려 빚을 면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소크라테스를 찾아간다. 그러나 건망증때문에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농부는 아들로 하여금 대신 배우게 한다. 훈련을 받고 돌아온 아들을 본 농부는 “얘야 장하구나! 네 몸엔 벌써 부정하고 반박하는 습관이 배어 있구나. 또 가해자를 오히려 피해자로 보이게 하는 몰염치도”라며, 기뻐한다. 마침내 아들의 변론 덕에 채권자를 따돌리고 잔치를 벌이게 되는데, 아비와 아들은 시인에 대한 얘기를 하다 다투게 된다. 그러자 아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매를 들었듯이 자신도 아버지를 때려도 된다며 구타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아버지에게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면서도 뻔뻔한 궤변을 늘어놓는 아들을 통해,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소피스트들의 교육의 폐혜를 풍자한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본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말하는 소크라테스와 좀 다르다.
‘소크라테스 스타일’(김영사)의 저자 김용규는 아리스토파네스가 본 자연철학자이자 소피스트로 그려진 소크라테스는 40대까지의 소크라테스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결혼을 하고 석공을 그만 둔 50세쯤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사유하는 방법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며,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이런 분깃점에서 나온 새로운 사유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문답법은 상대의 주장에서 모순을 끌어내 논박하는 방식으로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이런 논리구조는 파리지옥처럼 일단 걸려들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끝장이 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50세 즈음부터 죽을 때까지 정치가, 웅변가, 변호사, 시인 등 내로라하는 이들을 찾아가 이런 대화로 그들의 무지를 드러냈고 미움을 샀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유방식과 삶을 ‘빼기’로 표현한다. 본질적인 것, 보편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해 부수적인 것을 제거하고 부정하고 배제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왜 빼기가 필요했을까? 상대의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우쭐대고 싶어서였을까?
저자는 당시 사회상에 주목한다. “거짓말쟁이와 개소리꾼들이 득세하고 시민들은 사실보다 사실스러움에 더 귀를 기울였다.”
당시는 소피스트들의 이중논변이란 변론술이 유행하던 때였다. 올림피아가 열리는 경기장이나 체육관에서 수사학의 능력을 과시하는 대중공개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등 소피스트들은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바꿀 수 있는 반론술의 힘, 이중 논변의 힘을 과시했다.
억견과 궤변은 무엇이 참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진리와 정의는 찾을 길이 없게 됐다. 소크라테스는 이 점을 걱정했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정의를 주장한다면, 보편적 진리와 정의란 없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이 억견과 궤변에서 벗어나 윤리적 삶을 살 수 있게,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의 대화법을 꺼내 든 것이다.
저자는 푸코가 표현한 ‘소크라테스의 파레시아(진실 말하기)’을 빌어, 진실을 말하고, 윤리적 삶을 살기, 공공선을 위한 비판하기가 끊임없이 상호 교차하는 파레시아가 소크라테스의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말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독당근즙을 마시고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말과 삶이 일치하는 비판적 태도의 모범을 보인 진정한 파레시아스트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서구정신사와 문명에 남긴 깊은 자국을 따라간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을 운리학, 도덕론에 적용한 견유학파의 대표적 인물 디오게네스를 비롯, 절제의 모범을 보인 스토아학파의 세네카, 황야의 별로 불리던 은둔수도사 성 안토니우스, 대표적인 '부정신학'자 위 디오니시우스 등을 조명한다. 소크라테스의 사유방식을 의식적으로 계승한 키르케고르, 시대의 문제를 돌파하며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연 비트겐슈타인 등도 빼기 정신의 계보에 든다.
특히 미켈란젤로,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쇤베르크 등 예술가, 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바다우와 지젝의 혁명, 데이비드 소로의 불복종, 스티브 잡스의 심플 미학까지 제거와 배제를 통해 본질에 도달하려는 빼기의 기술, 서구의 뿌리깊은 사유방식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소크라테스일까?
저자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이유로 터무니 없는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개소리꾼이 득세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개소리꾼들은 그것이 거짓말이든 아니든 주구장창 반복해 짖어대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아냈다”며,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가 믿는 그 무엇이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2500년 전 아테네와 다름이 없다는 얘기다. 진실보다 진실스러움에 현혹된 때, 이성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소크라테스를 불러온 이유다.
이윤미 기자
소크라테스 스타일/김용규 지음/김영사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