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 美외교는 실패의 역사
‘자유주의 패권’전략, 비현실적
외교 엘리트 기득권층, 실수 번복
트럼프외교는 ‘재앙’…역량 훼손
역외균형자 역할 점진 회귀 필요
중국과 경제문제로 미국 거리두기는
중국 변덕에 놀아날 위험만 커질 뿐
한미 동맹은 韓안보의 핵심축 돼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미국의 외교정책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파격 행보 이전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다. 동맹을 우선시하고 자유와 민주의 가치, 자유무역, 인권을 앞세운 전략을 고수해왔다. 고상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고전하며, 문제적 지역들에서 오히려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엄청난 댓가를 치렀다. 미국이 내세운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질서를 흔들어놓았다.
미국 외교가 엘리트그룹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스티븐 M. 월트 교수는 ‘미국 외교의 대전략’(김앤김북스)에서 미국의 지난 25년의 외교를 실패한 전략으로 규정한다. 1992년 소련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이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월트는 이 실패한 외교를 ‘자유주의 패권주의’ 전략으로 부르며, 이에 대한 외교가의 완고한 의지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외교전략은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20세기초부터 냉전 종식 전까지 ‘역외균형자(offshore balancer)’ 역할에 충실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균형이 깨질 때만 개입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에는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파멸시키는 상황을 막기 위해 참전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과 아시아의 패권을 시도한 독일과 일본을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후 소련을 막기 위해 지역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끈끈하게 형성, 소련을 막았다.
문제는 냉전 체제가 끝나고 미국 패권시대가 열리면서다. 자만에 빠진 미국은 미국의 힘을 사용해 민주주의와 개방시장, 진보적 가치를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확산시키려 했다. 여기에는 공화당, 민주당 당파가 따로 없었다. 확대된 나토(NATO),세계무역기구(WTO)는 바로 그 결과다.
월트에 따르면 미국적 가치, 자유주의 패권전략은 실패할 운명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세계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정확하고 비현실적이었다. 다른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복잡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또 여타 국가나 비국가 행위자로 하여금 미국의 노력에 저항하거나 이용하도록 부추겼다는 게 월트의 주장이다.
그런데 왜 미국 지도자들은 이런 실수를 계속 반복한 걸까? 월트는 그 배후에 미국 외교안보 분야 기득권층을 지목한다. “이들의 초당적 커뮤니티는 25년간 신념과 정책적 선호가 거의 진화하지 않은 동종번식의 전문 집단”으로, “자유주의 패권에 대한 기득권층의 강력한 의지는 또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지닌 인식과는 확연히 상충되고 있다”고 월트는 지적한다.
이런 미국 예외주의라는 기존 통념을 뒤집고 나선 이가 트럼프다. 미국적 이상의 전파라는 국제주의외교전략이 국내 문제를 키웠다며, 실리주의 국가주의 노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동안 외교의 참담한 결과를 목도해온 유권자들은 미국의 역할에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 트럼프를 선택했다.
현실주의 외교노선을 견지해온 월트는 트럼프 노선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이내 절망했다.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방식은 “마치 외교정책을 어떻게 고치면 안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다”고 지적한다. 무지와 자질부족, 형편없는 정책 선택의 결과로, 외교정책 커뮤니티 핵심 세력들이 오히려 단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한마디로 재앙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어렵게 일궈온 영향력을 낭비해버렸고, 변덕스러운 행동은 동맹국들을 놀래켰을 뿐 정작 미국의 적들을 봉쇄하거나 포섭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균형잡기는 커녕 안보 공약을 축소하지도 못한 채 역량만 훼손시켰으며,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판단력과 능력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는 질타다.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미국의 안보전략과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대한 이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월트는 미국이 이젠 기존의 자유주의 패권이란 목표를 포기하고 현실주의적 외교안보전략으로 돌아올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즉 역외균형으로의 점진적 전환이다.
일본과 소련에 그랬듯이 중국이 아시아 패권국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이 이웃국가들에게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에 굴종하게 만들어 지역 패권을 장악하면”, 다른 지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수월해지고 결과적으로 미국 안보도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는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안보협력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난관이 적지않다. 아시아 각국의 중국과의 경제관계,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 집단 안보 비용 부담 등이다. 월트는 미국의 강력한 동맹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과의 안보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한국과 미국 간 안보 파트너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월트는 진단한다.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을 포용함으로써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보호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할수록 중국의 변덕에 놀아날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한미 간의 양자 동맹은 한국의 안보정책에서 핵심축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위비 분담금이나 통상문제, 주둔군 기지관리, 대북정책 등은 인내심과 진정성 있는 외교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파트너십이 약화된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말도 더했다.
미국 외교의 대전략/스티븐 M. 월트 지음, 김성훈 옮김/김앤김북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