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 이야기를 꺼내면 세대별로 다른 연상을 한다. 베이비붐 세대 이상은 ‘도비꾼’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토목공사장의 노무자를 뜻하는 일본어 ‘도비쇼큐’에서 파생됐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전쟁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철도와 교량 등을 건설하는 작업이 많았는데 지금의 크레인이나 지게차와 같이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건설기계가 없었기에 현장에서 이런 특수하고 위험한 작업을 할 줄 아는 역량을 지닌 전문인력을 뜻하게 됐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서는 조앤 롤링의 소설과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집 요정 ‘도비(Dobby)’를 떠올리는 경우가 더 흔하다. 작은 키에 바싹 마른 체구와 큰 눈을 지녔으며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는 요정 종족이다. 요리나 청소 등의 집안일에 만능이며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일생의 낙으로 삼는 ‘엘프’다. 호그와트마법학교도 수백에 달하는 집 요정의 봉사로 운영된다. 마법사보다 뛰어난 마법 능력으로 해리 일행을 도와주는 임무를 수행한다. 산타클로스의 선물 포장을 도와주는 요정처럼, 유럽 전설 속 ‘집안일을 돕는 작은 엘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혹자는 모직물의 직조 문양 중 ‘도비 패턴(dobby pattern)’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쉴 틈 없이 일하는 직조기에서 착안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요정이기도 하고 중량물의 특수작업을 담당하는 일꾼이기도 한 존재가 있다. ‘전기’ 말이다. 배전망 지중화로 길거리에서 전봇대를 흔히 볼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전기’는 집 안의 콘센트 플러그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엘프’ 같은 존재가 됐다. 원자핵의 속박을 떨치고 나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꼬마요정 ‘전자’가 펼치는 마법인 ‘전기’는 현대 기술문명의 토대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수많은 전자기기와 이러한 기기를 만드는 제조 공정의 핵심 원리이자 일상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해주는 전동기의 에너지원이다.
19세기 전기혁명으로 대변되는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물질적 풍요의 대중화에 성공하게 된다. 20세기에 진행된 3차 산업혁명인 정보화 혁명도 ‘전자’의 마법이 없었다면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으로 표상되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도 ‘전기’와 ‘전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메타버스’기술은 해리포터의 마법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연구·개발 및 성과 확산을 통해 국가 전력 및 전기산업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전기 전문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지난해 7월에 발표된 ‘뿌리 4.0 경쟁력 강화 마스터 플랜’에 발맞춰 자동차·조선·반도체와 같은 국가 주력 제조업뿐만 아니라 로봇·에너지·환경 등 미래 신산업의 기술력을 뒷받침하는 기반산업 재도약과 미래산업 주도를 위한 첨단 전기응용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도비(都鄙)’는 서울(都)과 시골(鄙)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국가 균형발전이 강조되는 요즘, 한국전기연구원이 비루(鄙陋)한 공공기관의 하나로 머물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통합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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