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10년간 일어날 변화가 1년 만에 일어났다.”
유통업계는 올해를 ‘격변의 시기’로 정의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변화의 시기가 최소 3~5년 앞당겨졌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무거운 장바구니가 집 앞에 배송된다. 아파트 현관문엔 두 집 건너 한 집씩 쿠팡과 마켓컬리의 종이박스가 쌓여 있다. 옷과 화장품 테스트는 오프라인에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한다. 백화점과 쇼핑몰은 구경만 하는 쇼윈도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소비 행태는 소수의 ‘체리피커(cherry picker·체리만 골라 먹는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코로나 사태로 ‘가장 똑똑하게 쇼핑하는 법’을 반강제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었다. 차를 마트까지 끌고 가 수산·과일·생필품 코너를 휘저으며 땀방울을 흘리지 않아도 손쉽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배달앱 하나면 카페·음식점·편의점에서 30분 내 배달이 가능하다. 온라인쇼핑에 서툴던 중장년층도 이젠 이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회의 인식은 어떤가. 강산이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생각은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2012년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지자 유통산업발전법을 만들고 대형 마트의 월 2회 휴업을 의무화했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고 유통산업의 상생 발전을 이끌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기대처럼 대형 마트에서 전통시장으로 움직였을까.
그 후 8년이 지났지만 전통시장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유통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유통산업의 상징이었던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은 인력을 감축하고 점포를 철수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비시장에서 오프라인매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69.6%에서 올해 10월 54.5%로 급감했다. 이젠 오프라인 유통업체도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공룡’에 쫓기는 신세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8년째 한결같다. ‘골목상권과 오프라인 유통업체’라는 해묵은 경쟁구도를 아직까지 고집한다. 최근 복합쇼핑몰 출점규제지역을 전통시장 반경 1㎞ 이내에서 20㎞ 이내로 강화하고, 영업규제 대상을 대형 마트에서 복합쇼핑몰·백화점·면세점까지 확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쇠퇴하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산업을 옥죄면 골목상권이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일까.
2022년이면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오프라인매장이 줄지어 폐점하는 ‘소매업 대재앙(retail apocalypse)’을 경고하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골목상권 보호만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모두 달성한 후에도 지켜야 할 지역상권이 남아 있을까. 전통시장은 물론 대형 마트까지 온라인시장에 잠식당한 후일지 모른다. 유통산업발전법의 목적이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