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건강 상태는 현지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87세인 그는 2009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14년에는 심혈관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건강 상태가 기사화되는 이유는 그가 90세까지 퇴임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진보성향인 긴즈버그 대법관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법관을 지명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임기가 6년인 우리나라와 달리, 미 연방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법관을 갈아치우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대법관들도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긴즈버그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에 올랐다. 이미 19년 전에 물러난 클린턴이 긴즈버그를 통해 현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하고 있는 셈이다.
법원이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소극적으로 입을 다물라는 게 아니다. 법원이 행정이나 입법 권력을 견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편파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법원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대법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개의 재판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대법원장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 국회의장과 함께 삼부 요인인 대법원장은 법원이 정치적으로 부당한 공격을 받을 때 방패가 돼줄 수 있다.
지난 11일 법원의 날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합리적 비판을 넘어 근거 없는 비난이나 공격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으로 재판에 더욱 집중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나가는 것도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하다”거나 “익숙함에 대한 과신을 경계하고, 사회 현상과 조류에 둔감해져 있지는 않은지 항상 되돌아보라”고 했다.
여당 정치인들이 광복절 집회 제한이 위법하다는 결정과 관련해 특정 판사 실명을 거론하며 조리돌림에 가까운 비난을 가하고 욕설을 공식석상에서 뱉는데도, 대법원장의 발언은 뒤늦게 내부를 향했다. 그런데 ‘합리적 비판을 넘는 비난이 있다→ 법관은 흔들리지 말아라→과신을 경계하라’는 3단 논법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합리적 비판을 넘는 비난이 있다→정치권은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언사를 자제해야 한다→일선 재판부는 소신있게 재판하라’가 오히려 맞지 않을까.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문제를 사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법원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통해 특정 사건을 언급하며 법원을 맹비난하자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은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시오”라고 맞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독특하게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병존한다. 대법원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법률에 대한 위헌확인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행 헌법은 독자적인 기구를 만들었다. 이 결과 대법원은 법률이 아닌 규칙에 대한 위헌심사권만 가지게 됐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은, 내부 구성원을 훈계하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행정, 입법 권력이 법원을 쥐고 흔들지 못 하도록 외풍을 막아주라고 부여된 권한이다. 긴즈버그도, 김병로 전 대법원장도 자신의 소신을 말했지만, “정치에 나선다”고 비난받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