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황매산 봄엔 철쭉, 가을엔 억새밭 장관…영화촬영 몰리는 영상테마파크
팔만대장경 보관 해인사·홍류동계곡도 일품…2011년 시작 기록문화축제도
[헤럴드경제(합천)=김성진 기자] 전국 팔도에 산과 숲이 즐비한 우리의 가을은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다. 나무들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10월이면 사실 전국 어지간한 산은 물론 뒷동산 산책로만 올라도 눈호강 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이 계절에 꼭 가볼만한 아까운 풍광은 발품팔아 찾아가도 후회하지 않는다. 조금 멀다 싶지만 막상 마음 먹고 나서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경상남도 합천도 그런 여행객들의 노고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볼 거리를 품고 앉은 고장이다.
경남의 제일 북쪽으로 경상북도와 접하고 있는 합천은 면적의 72%가 산지인 산간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창녕, 북으로 경북 성주 고령, 서로 산청 거창, 남으로 의령군과 맞닿아 있으며 남북으로 긴 모양새다. 서쪽에는 합천댐을 막아 생긴 커다란 합천호가 있다.
합천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가야산 해인사와 철쭉과 억새가 장관인 황매산이 유명하다. 여기에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된 영상테마파크, 대장경테마파크, 2011년부터 시작된 기록문화축제 등도 관심을 모은다.
합천의 북쪽에 가야산이 있다면, 남쪽에는 황매산이 버티고 있다.
해발 1108m의 황매산은 높이에 비해 700m~900m 지역에 너른 황매평전이 펼쳐져 강원도의 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평원을 뒤덮어 많은 여행객들을 불러모은다. 황매산 철쭉과 억새가 만발하게 된 것은 과거 양떼를 풀어 기르느라 목장을 조성해 큰 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철쭉은 또 독성이 있어 양들이 먹지 않아 퍼져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도, 전적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아닌 묘한 철쭉군락지다.
지난 97년 지역축제로 조그맣게 시작됐던 철쭉제는 올해로 벌써 23회째 치러졌고, 지난 4~5월에 걸쳐 열린 행사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려 봄을 만끽했다.
지금은 억새가 절정을 향해 피고 있는 시기이다. 은빛 솜이불을 펼친 듯 아스라한 억새물결이 바람에 눕고 일어서며 산을 뒤덮은 모습이 감탄을 자아닌다. 이달 말쯤 되면 억새가 가장 풍성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해뜰 무렵이나 해 질녘 햇살을 받는 모습은 일품이니 시간대를 잘 맞춰 방문하는게 좋다. 억새밭 사이로 편하게 걸으며 사진도 찍고 조망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애써 등산장비를 갖출 필요가 없고 군데군데 벤치도 있어 쉴 수도 있다.
황매산에서 가을억새에 취했다고,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가야산 해인사를 빼놓아선 곤란하다.
1200년 전 통일신라때 창건된 해인사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온 이름이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한국불교의 성지 중 하나인 해인사는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합천과 해인사를 상징하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곳이라 수많은 여행객과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주불전 뒤 언덕에 세워진 해인사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목조건물로 15세기 무렵 세워진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바닥 흙에 숯 등을 이용해 습기 등이 잘 빠져나가도록 해 목판들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 놀랍다. 일반인들은 건물외형과 건물 사이의 마당까지만 출입이 허용되지만, 목조창틀 사이로 팔만대장경의 모습을 살짝 볼 수는 있다. 과거에는 관람이 가능했지만 남대문 방화사건과 불붙인 부적을 던져넣으려던 사례 등이 생긴 뒤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한다. 또한 만일의 화재에 대해 해인사는 자체 소방차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팔만대장경은 정확히 몇개일까. 아직 정확히 공식화된 숫자는 없다고 보는게 맞다. 일제시대 총독부가 세었던게 8만1258개라고 하며, 해인사 장경판전 입구 표석에는 8만1350개로 쓰여있다. 또 8만1340개라는 설도 있다. 최근 한 대학에 의뢰해 정밀측정을 했지만 중간에 추가된 경판을 포함시킬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해 공식적인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수많은 백성과 승려, 장인들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는 나라를 지키기위해 만든 대장경의 가치와 의미는 조금도 퇴색되지 않는다. 8만장이 넘는 경판에 똑같은 구양순체의 글자가 오자도 없이담긴 것을 본 추사 김정희가 "이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쓴 것 같다"고 놀랐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실제로는 158자의 오자가 있다고 하나 전체가 무려 5200만자에 달하고, 글자를 파는 각수만 1800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합천에서는 이를 알리기위해 지난 2011년부터 합천기록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19일부터 11월 3일까지 16일간 해인사에서 멀지않은 대장경테마파크 일원에서 열린다.
지금은 소실된 팔만대장경 초조대장경이 1011년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그 1000년 뒤인 2011년 처음 축제를 시작했다(현재 해인사에 보관중인 것은 1251년 완성된 재조대장경이다).
이 기간중 특별행사로는 팔만대장경 전국예술대전이 19~25일까지 기록문화관에서 열리며, 전국사진공모전도 함께 열린다.
축제 기간 준비한 실내 콘텐츠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 VR체험, 도예체험 등 실내 행사와 초청가수 및 댄스 공연 등이 준비돼있다.
야외에서는 가을꽃 전시, 해인사 폭격지시를 거부했던 김영환장군 수호비행기 전시, 대형 한글대장경판 전시 등 다양한 볼거리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야외특설무대에서는 매 주말 팝과 오페라가 조화된 팝페라 공연과 창작타악 공연, 가을과 잘 어우러지는 통기타 공연, K팝 댄스 공연은 물론 직장인밴드 공연과 국내외 전통무용 공연도 마련된다. 대장경테마파크 체험존에서는 고려복식 문화와 팔만대장경 이운행렬을 재현하며 대장경 인쇄 체험과 서예가가 써준 가훈을 받아 갈 수도 있다.
대장경 테마파크는 넓은 부지에 대장경천년관, 대장경빛소리관, 기록문화관 등을 잘 조성해놓았지만 아직 하드웨어를 채워넣을 소프트웨어가 조금 부족해 보여 아쉽다. 대장경을 합천만의 문화재로 보지않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록문화유산으로 보고 문화재청 등 중앙부처에서 다양한 기록문화유산을 함께 전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면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가야산국립공원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4㎞ 남짓한 길 옆에는 홍류동 계곡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붉게 물든 단풍이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이곳은 신라시대 천재로 불렸던 고운 최치원 선생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문경이나 해운대 등도 최치원의 유적을 잘 조성해놓았지만 이곳에도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가야서당, 자연을 벗삼아 지냈던 농산정, 많은 싯구를 새겨놓은 바위 등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이곳을 찾은 우암 송시열의 글귀로 추정되는 글도 바위에 남아있다. 한때 영정을 모셨던 사당 등이 가문의 송사에 휘말려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합천영상테마파크도 흥미로운 코스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할 당시 만들었던 세트장으로 시작해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는 곳으로 일제시대, 구한말, 70년대 종로거리 등 다양한 세트가 있어 포토존으로 인기다. 조금 떨어져있는 청와대 세트는 110여억원을 투입해 실제 크기의 70%정도로 조성했다. 외관을 보면 실제 청와대와 흡사하다. 만들 당시 청와대에서 '어떻게 설계도를 구했느냐'고 물어오고 '똑같이 만들지 말라'고 했다는 후문도 있다.
합천은 맛좋은 쇠고기 식당이 모여있는 삼가면 한우골목도 유명하지만, 저녁에는 장사를 하지 않아 낮에 가야한다는게 아쉽다. 특이한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오곡밥정식을 내놓는 합천호관광농원에 들러보자. 오곡이라지만 7~8가지 잡곡밥은 거칠지만 씹을 수록 고소하고, 찬으로 나오는 손두부와 나물반찬도 자연의 맛이 느껴진다. 제철에만 후식으로 나오는 대봉감은 못생겼지만 맛이 좋다. 해인사 아랫마을에서는 향이 일품인 송잇국정식을 찾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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