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은… 사람 중심 믿음 경영 ‘침묵의 거인’ “두산의 간판은 두산인들” 강조 ‘중공업’ 두산 대변혁 이끈 주역
주력 OB맥주 매각 체질개선 주도 “지키지 못 할 말 하지 말라” 실천 OB베어스 창단 각별한 야구사랑 선수들 시즌기록 외울정도…
“나는 무엇보다 사람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잘나고 못나면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노력하는 사람, 그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사원이 일생을 걸어도 후회 없는 직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3일 별세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87)은 재계에서 사람 중심의 믿음경영을 실천한 ‘침묵의 거인’으로 통한다.
박 회장은 “두산의 간판은 두산인들”이라며 “나야 두산에 잠시 머물다 갈 사람이지만 두산인은 영원하다”고 인재중심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123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의 3대 총수다.
1932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두병 회장은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이다. 박용곤 회장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998년 그룹 모태인 OB맥주를 과감히 매각, 자산 30조원(재계 15위)의 ‘글로벌 두산’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1대 박승직 창업주 시절 포목점에서 2대 박두병 회장 식음료 사업을 거쳐 3대에 두산을 중공업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맥주병 씻기부터 시작한 두산 첫 업무=박용곤 명예회장은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행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3년 동안 은행 생활을 한 박 회장은 1963년 4월 동양맥주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업무는 공장 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
이후 선진적인 경영을 잇따라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계열사 재편ㆍ국내 최초 연봉제 ‘혁신’ 앞장=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세를 불렸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경영 위기 때는 주저없이 ‘혁신의 선봉’에 섰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로 재편했다.
이어 두산의 대표사업이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획기적인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해 나갔다.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도 적극 도입했다.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에는 토요 격주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며 여름휴가와 별도의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과묵했지만 경청했던 ‘침묵의 거인’=박 회장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의 거인’으로 알려진 이유다.
생전 박 회장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에도 실무진 의견을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6.25전쟁 참전용사…야구사랑도 ‘각별’=박 명예회장은 6.25전쟁 참전용사와 각별한 야구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조용한 성품 탓에 이 같은 공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뒤늦게 인정받아 2014년 5월 6.25전쟁 참전용사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 받았다.
야구사랑도 각별했다.
박 회장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2군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천예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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