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발진티푸스 차단 ‘방역선’ 인도적 배려 외면 ‘봉쇄’만 주력…인권침해 논란속 죽음의 땅 우려
서아프리카를 공포로 몰아넣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1세기 만에 ‘방역선’을 부활시켰다.
방역선(防疫線ㆍcordon sanitaire)이란 전염병 차단을 위해 감염지역 주변에 비상 경계선을 치는 것을 말한다. 방역선이 선포되면 해당지역 출입이 통제돼 사실상 안에 있는 사람은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
에볼라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3개국(시에라리온ㆍ라이베리아ㆍ기니)이 이달 초 방역선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지 한 달이 돼 간다. 이들 3개국은 감염환자의 70%가 집중된 국경 삼각지대에 수천명의 군ㆍ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주요 도로를 모두 폐쇄했다. 시에라리온의 경우 제주도 크기의 6배(1만991㎢ )에 달하는 지역이 방역선 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방역선 결정이 의료 정책이 아닌 군대를 투입한 격리 조치에 그치면서 정부의 에볼라 차단 노력을 대내외 알리는 리액션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역선, 죽음의 저지선=방역선은 14세기 유럽을 집어삼킨 흑사병(페스트)을 차단하기 위한 전술로 알려져 있다. ‘방역선’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21년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번진 ‘황열병’을 차단하기 위해 피레네 국경에 3만명의 군대를 파견하면서부터다. 가장 최근에는 1918년 발진티푸스 유행을 막기 위해 폴란드와 소련의 국경에 쳐진 것이 마지막이다.
미국에 방역선이 그어진 경우도 있었다. 본토는 아니지만 1899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페스트가 발생하자 중국인과 일본인 거주지역 약 35에이커(0.14㎢) 지역이 방위군과 백인 감시단에 의해 봉쇄됐다. 하와이의 경우, 아시아인 밀집지역에 방역선이 그어지면서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지역 노동자들은 외출할 때 반드시 샤워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전염병이 차단되지 않자 극단의 처방책이 발동됐다. 페스트균을 옮기는 벼룩이 발견되는 건물에 불을 지르기로 한 것. 그러나 불은 진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일대를 전소시켜 주민 8000명이 노숙자 신세가 됐다.
▶‘죽기 살기식’ 격리 인권침해=방역선은 인권 침해 논란을 확산시킨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방역선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일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서아프리카 3개국의 경우,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질병에 대한 무지와 정부에 대한 불신, 주술사를 믿는 토착신앙 등이 만연하면서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또 많은 농민들이 이미 사망했고, 상인들은 통행이 불가능해 식품 가격이 치솟아 결국 굶어 죽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NYT는 “식량, 물, 의료서비스가 현지에 도착돼 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질병예방관리센터(CDC) 관계자들은 “이번 방역선 설정이 에볼라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도적 배려가 없으면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CDC의 마틴 세트론 박사는 “질병 봉쇄의 대가로 봉쇄지역이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NYT는 “방어선 내 사람들에게 식량과 물, 의료지원의 손길이 닿게 해야 하고, 봉쇄지역 주민이 국내외 지도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해 항상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WHO는 지난 20일 기준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는 1427명, 감염자는 2615명으로 집계했다.
천예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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