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금에도 계급이 있다?
씨티은행 5년치 추가 연봉 파격조건 퇴직금까지 최대 10억…너도나도 몰려 LH 등 공기업 근무년수 25% 지급 정부 가이드라인 외 평균 1억 웃돈도 중기 쥐꼬리 명퇴금…없는곳 수두룩
명예퇴직금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잘 다니던 외국계 은행에서 두둑한 명퇴금을 받아 부동산 재벌로 거듭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얼마 안되는 명퇴금으로 통닭 프랜차이즈를 차렸다가 원금조차도 못 건진 중년들도 존재한다. 명퇴금을 어떻게 운용했는가에 차이도 있지만, 결국엔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에 달하는 명퇴금의 규모가 성패를 좌우한다. 6억원과 5000만원의 차이는 분명하다.
명예퇴직금 최상위 정점은 은행이다. 올 6월 씨티은행 직원들은 너도나도 회사를 떠나겠다고 손을 들었다. 심지어 회사는 명예퇴직을 신청한 직원 130명을 다시 주저앉히기도 했다.
겉으로는 점포 30%를 줄여야 했던 회사의 우울한 미래에 대한 반발이였지만, 손을 든 직원들의 속내는 ‘눈 돌아갈만한’ 명퇴금에 집중됐다. 씨티은행의 명퇴 조건은 파격적이였다. 근속년수에 따라 최대 60개월, 즉 5년치 연봉을 추가로 지급했다.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높은 은행권에서도 이런 조건은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할 정도의 기회였다.
여기에 누진제를 고수해온 퇴직금 제도까지 더해지면서,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10억원의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임대소득으로만 매달 400여 만원을 받을 수 있는 조그마한 빌딩 한 채를 살 만한 돈이다.
씨티은행 전까지 명예퇴직의 황재는 KB국민은행이였다. 2010년 10월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위로금조로 최고 3년치의 연봉과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했다.
반면 같은 금융권이라해도 업황 부침이 심한 증권사의 사정은 좀 다르다. 지난 5월 명예퇴직을 처음으로 실시한 대신증권은 근속 년수에 따라 10개월 분에서 24개월 분의 급여를 추가 지급했을 뿐이다. 올 상반기 명퇴신청을 받은 동양증권, 삼성증권, NH농협증권, 하나대투증권 등의 명퇴금도 비슷한 수준이였다.
대기업들의 명퇴금은 중간 쯤이다. 지난 5월 직원 8000명에게 명퇴 신청서를 받은 KT는 2년치 급여를 위로금으로 추가 지급했다. 직원들 평균 급여가 6000여 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퇴직금 포함 대략 1억원에서 2억원 사이의 돈을 추가로 받은 셈이다.
그나마 KT의 사례는 양호했다. 외환위기 직후 회사의 존립 여부자체가 불투명했던 기아자동차는 1999년 단 6개월 분의 급여를 퇴직금에 더해줬을 뿐이다. 이는 기업 경영난을 이유로 명예퇴직을 받고 있는 다른 기업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됐고, 지금도 대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에서는 1년치 급여 추가분만을 받고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다수다.
명퇴계의 숨은 알짜는 공기업과 공무원이다. 금융, 특히 은행권이 왕족이라면, 공기업과 공무원들은 6두품 귀족정도 된다고 할까. 2010년 직원 20여명을 명예퇴직 형식으로 정리한 한국거래소는 근무기간과 정년퇴직까지 잔여지간 등을 감안해 최소 24개월에서 최고 30개월 치의 봉급에 해당하는 돈을 퇴직금과 별개로 지급했다.
공기업들은 통상 잔여 근무년수의 25%에 해당하는 급여로 정한 정부 규정에 ‘신속한 구조조정’을 이유로 추가로 돈을 더 주고 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국정감사에서는 대한주택공사와 대한토지공사(현 LH), 한국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등이 정부 가이드라인 외 인당 평균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추가 지급한 것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올 초 ‘명예퇴직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공무원’ 뉴스가 쏟아져 나온 것도 상대적으로 후한 현행 명퇴금이 앞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었다. 정부는 최근 재정에 부담이 되는 공무원 연금제도를 손질함과 동시에, 명퇴금 제도도 사실상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대다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부분의 명퇴금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별도 명퇴금 없이 퇴사를 종용할 뿐이다. 그나마도 상시근로자 5인이하 소기업, 또 자영업자들은 퇴직금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정부가 퇴직연금 가입을 강화하고, 자영업자를 위한 공제회를 만드는 것도 이 같은 중소기업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최정호 기자/
choijh@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