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일감몰아주기ㆍ순환출자 편법 조장 - 정상적 세금 납부하면 지분 크게 줄며 경영권 위협 - 3ㆍ4세 승계 작업 본격화하는 재계…상속세 문제 진퇴양난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현재의 상속세율로는 기업의 경영권 수성이 불가능합니다. 일감몰아주기, 순환출자 등도 결국은 높은 상속세율을 회피하고자 고안된 수단인데, 이제는 시대의 변화 흐름 속에 이 또한 불가능해지는 수순입니다. 결국 상속을 거치는 동안 기업 규모가 오히려 작아지고, 그룹이 해체되는 일이 불가피해질 것입니다.”(재계 고위 관계자)

재계에 ‘상속세 포비아’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60년 역사를 넘어서며 주요 그룹에서 3ㆍ4세로의 세대 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은 상속 재원이 부족한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감몰아주기와 순환출자 등 편법 경영의 유혹을 낳는 현 상속세율에 대한 제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빨라지는 재계 3ㆍ4세 승계…천문학적 상속세 부담에 골몰= 고(故) 이수영 OCI 회장의 별세 후 OCI 대표에 오른 이우현 사장은 최근 최대주주 지위를 내려놓았다. 이 사장은 지난 4월 보유주식 25만7466주를 매각해 지분율이 종전의 6.12%에서 5.04%로 줄었다. 보유 지분이 줄며 기존 최대주주 지위에서 이화영 유니드 회장과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에 이어 3대 주주가 됐다. 이 사장이 최대주주에서 내려오면서까지 일부 지분을 처분한 이유는 바로 상속세 때문이었다. 이 사장은 부친으로부터 지분 133만9674주를 상속받으면서 대략 11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했다.

이우현 사장의 사례는 최근 빠르게 3ㆍ4세 경영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주요 그룹 모두의 공통된 고민이다.

주요 그룹 회장의 나이는 70대를 넘어 80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들의 자손도 40~50대로 중년에 이르렀다.

하지만 승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총수가 있는 30대그룹 가운데 현대백화점을 제외하면 경영권과 지분 승계를 마무리한 곳은 드물다. 3세 경영인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별세로 4세 경영인 구광모 전 LG전자 상무가 LG그룹 회장에 취임했지만 지분 승계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납부해야할 세금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 회장 역시 보유 지분 매각을 통해 상속세를 납부하는 방법 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어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제일모직과 삼성SDS 증시 상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을 거치며 그룹 지배력을 높였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가 도마에 오르며 뇌물제공 혐의로 1년 간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다.

현대모비스의 분할ㆍ합병 작업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과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그룹 승계 과정에 첫 발을 내딛으려던 현대차그룹은 결국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이들 모두 향후 지분 상속을 위해서는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하는 공통된 부담에 직면해 있다.

▶편법 논란 일감몰아주기ㆍ순환출자 제동…경영권 위협ㆍ기업규모 축소 부작용 우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는 그간 여러 부작용을 낳아 왔다.

그룹의 3~4세들이 통상 젊은 나이에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지만, 이들이 보유한 현금으로는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납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보유 지분의 배당 수익을 통해 부를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이 자금만으로는 세 납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편법이 이용돼 왔다. 재계 3~4세가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안정정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상장회사의 대주주가 되곤 했다. 일감몰아주기는 전형적인 기업 승계의 종자돈의 핵심 기반이 됐다. 여기에 계열사를 동원해 다른 계열사를 간접 소유하는 형태의 순환출자가 더해지며 승계 작업 이후 그룹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기반이 됐다.

이는 재벌의 잘못된 경영행태로 지목되지만, 재계에서는 막대한 상속세 부담이 낳은 ‘풍선효과’로 해석한다.

이젠 이 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정부의 강력한 요구 속에 순환출자는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처지다. 일감몰아주기는 경제민주화의 흐름을 타고 강력한 해소 압박을 받고 있다.

승계 자금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던 공익재단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지분 승계를 위해선 보유지분을 포기하며 세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세금을 납부하다 자칫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일각에선 비합리적인 상속세율이 법망의 허점을 노린 또 다른 편법 사례를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세율은 비합리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피상속인이 부를 축적하는 단계에서 이미 세금을 냈기 때문에 사후 다시 과세하는 것은 엄연한 ‘이중과세’인 만큼 증가한 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과세로 전환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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