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年 80%유지 규제도 부담 처음부터 증여세 내는게 더 나아 현행제도론 10년기업도 꿈 못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명문장수기업 화신볼트산업. 1963년 선대 회장이 부산에 자리를 잡은 뒤 해양플랜트, 잠수함용 특수볼트 등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발전 특수볼트분야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1993년부터 선친의 뒤를 이어 사업을 이어가는 2대 대표 정순원 대표는 그러나 최근 시름이 깊다.
정 대표는 “자녀 가업승계를 검토하고 있는데, 고용유지 조건과 업종변경 금지조건이 가장 부담스럽다”며 “중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제조업이 많이 어렵다. 해양플랜트나 원전 모두 감소추세 아니냐. 특수볼트 산업의 5년 앞을 못 내다보는데 10년 앞을 어떻게 내다보고 인력을 유지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낮다보니 IT쪽으로 가려 해도 업종변경 규제에 걸린다. 기업이라는 게 시대에 따라 그때 그때 변하면서 살아남는 것인데, 제도가 너무 옭아맨다”며 “아버지 때부터 이만큼 키워온 걸 버리는 게 너무 아깝다. 특히 기술이 사장되는 게 아깝다”고 덧붙였다.
중소·중견기업들이 대를 이어 가업을 꾸려나가는데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통해 가업을 승계할 계획인 중소기업들은 ▷정규직 근로자 매년 평균 80% 유지 ▷10년 업종변경 금지 조건 등을 시급히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소속 중소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은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통한 가업승계를 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업상속공제란 업력 10년 이상 직전 3개 법인세 사업연도의 평균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 승계 시 가업상속재산을 업력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100% 공제해주는 제도다. 사후 10년간 자산·가업종사·근로자 유지가 그 조건이다.
기업인들은 이같은 엄격한 피상속인 요건과 근로자 유지 조건이 가업승계 제도 이용을 어렵게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식품업체는 할머니, 아버지에 이어 손자 A대표가 3대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아시아 대표 소스업체’가 목표지만 현재의 가업상속제도론 불가능에 가깝다는 하소연이다.
A대표는 “만약 10년 동안 업종을 유지하지 못하고 회사를 존속시키기 힘들어 폐업을 할 경우 세금 공제액을 어떻게 추가 납부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가업을 이어받는 사람에 대해 주식처분에 제한을 두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회사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안산의 주물업체 B대표는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하는데 10년 후에도 이 업종을 하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유지하지 못할 경우 퇴로가 필요하다”면서 “사업지속이 어려워 청산할 경우 추가로 발생하는 세금에 대한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 설문 결과 가업상속공제 적용시 사전 요건 중 시급하게 완화됐으면 하는 사항 1위로는 ‘정규직 근로자 매년 평균 80% 유지’가 37.6%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사후의무이행요건 기간 10년’이 25%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가업용 자산 80% 이상 유지’ 20%, ‘상속인 가업 종사(대표이사) 유지’ 7.4%, ‘사후의무이행요건 불충족 시 7년 미만까지는 100% 추징’ 4.6%였다.
자랑스러운중소기업인협의회 회장이자 선친의 뒤를 이어 김 수출사업의 길을 개척한 김덕술 삼해상사 대표는 “2세 입장에서는 현금 물려받아 투자나 하면서 사는 게 사실 훨씬 낫다. 고통스럽게 뭐하러 사업체를 물려받겠냐”고 되물었다. 2세 경영은 ‘잘해야 본전’ 이라는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창업보다 수성의 어려움이 더 큰 만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기 조사에서 가업승계 과정의 최대 애로는 ‘상속세 등 조세부담’(67.8%). 현재 세부담을 줄여주는 제도가 있지만,가업을 지속할만한 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형제 공동상속의 경우 가업승계 의사가 분명해지므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명문장수기업’인 C기계공업은 형제가 가업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C공업 측은 “형제끼리 의지하며 경영하려는데, 상속세를 줄일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 공동상속의 경우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업승계 제도를 통한 세액 감면보다 10년간 지게 될 책임이 부담돼 차라리 제도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후계구도를 준비 중인 D기업 대표는 “(가업승계제도 대신) 일반공제로 바꾸려고 한다. 10년 책임을 지우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세금을 내는 게 낫다”며 “가업승계가 되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10년 동안 유지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사업이 잘 안 돼서 공제된 세액을 뱉어내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증여세를 일반인처럼 내는 게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란 것이다.
D기업 대표는 “가업승계시 제한조건은 회사변동조건이 아니라, 상속인에 한정해 조건을 걸어야 한다”면서 “달리던 차에서 갑자기 운전수가 바뀌는데 누군가는 운전대 잡아야한다. 잘 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차가 기울었다면 사업을 청산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래야 있는 직원이라도 살릴 수 있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김진원 기자·박이담·성기윤·이민경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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