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지난 8일 오후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연말을 알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을 알리는 소리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은 싸늘했다. 자원봉사자 이재선(58ㆍ여) 씨가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라고 목청껏 외쳐도 사람들의 시선이 빨간 모금함에 머무는 시간은 단 몇 초도 되지 않았다. 그는 “이영학 때문에 선량한 기부단체까지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원망스럽다. 대부분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지도 않고 지나가버린다”고 토로했다.
연말연시 기부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올해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이영학 사건, 새희망씨앗 사회복지단체 사건 등 기부금 관련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시민들 사이에선 ‘기부금 단체를 못 믿겠다’는 기부 포비아(phobiaㆍ공포증)가 번졌다. 아직 올해 기부금 현황이 집계되진 않았지만 복지단체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기부포비아는 심각한 수준이다.
A 기부단체 담당자는 “기부금 다른 데에 쓰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기부금 사용 내역서를 보내드려도 못 믿겠다고 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영학 사건의 영향이 아무래도 큰 것 같지만 이영학은 개인이 기부금을 모은 것이라 기부단체와는 별개의 문제지만, 기부단체도 모두 사기꾼 취급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지역의 소규모 기부단체의 문의전화는 뚝 끊겼다. 후원 캠페인을 벌이려고 시민들을 만나러 나가도 “모든 내역을 공개할 수 있겠냐? 못 믿겠다”는 반응뿐이다. B기부단체 관계자는 “연말은 가장 바쁠 때인데 요즘은 소액 기부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11월 기부금은 역대 최저였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표적인 연말 기부금 캠페인인 사랑의 열매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의 모금 액은 11일 현재 648억원으로 목표액인 3994억원의 약 16.2% 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 2015년만 해도 같은 시기에 목표액(3268억원)의 20.1%인 690억원이 모금됐었다. 올해는 4분의 1 가량이 줄어든 셈이다.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이영학 사건’ 때문만 아니다. 올해 발생한 일련이 사건들이 기부금 기피현상에 불을 지핀 것이라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부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15년 29.9%으로 내려갔고, 올해는 26.7%까지 떨어졌다.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참여율이다.
기부가 줄어드는 건 기부를 할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마음이 안생기기 때문이다. 기부문화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기부자가 기부하지 않는 이유로 절반이 넘는 이들이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54.8%)라고 답했다. 기부단체를 신뢰할 수 없음(18.2%), 기부에 관심이 없음 (12.9%). 기부단체 기부방법을 모름 (9.4%) 등이 뒤를 이었다.
경제적 여력이 없다고 기부를 안 하겠다는 50%의 벽은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쉽게 허물 수 있는 요소다. 이영학 사건을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이영학이 딸의 안타까운 사연을 통해 모은 기부금은 12억여원이나 된다.
당시 이영학을 도운 사람들이 모두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도운 게 아닐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부 단체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부단체들을 신뢰할 수 없고, 기부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동안 사람들이 기부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는 데도 기부단체들은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진 않았었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부단체들도 변해야 한다.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기부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부를 받는 이웃과 사람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만날 수 있게 할 수도 있고 기부금 사용 내역을 귀여운 카카오톡 이모티콘과 함께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기부하는 사람들도 달라져야 한다. 비케이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기부단체를 고를 때 ‘집을 고르듯’ 깐깐하게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기부자들이 꼼꼼하게 기부단체를 선택해야 시장의 논리에 의해 투명하고 잘 운영되는 곳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기부는 연말에만 한다는 잘못된 문화도 깨질때가 됐다. 어려운 이웃들은 연말 크리스마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