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슈섹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손빈 줄리아 리(한국이름 이주아ㆍ李珠亞ㆍ본명 줄리아 멀록)가 지난달 타계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져 쓸쓸함을 더한다.
6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대한제국 황태자인 영친왕(英親王·이은·李垠)의 며느리였던 줄리아 리가 지난달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로 생을 마감한 줄리아 리의 타계 소식은 열흘이 지난 뒤 먼 친척(9촌인 삼종숙부인의 조카)인 이남주(78) 전 성심여대 교수가 지난 5일 알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는 뉴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중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나온 건축가 이구(李玖)를 만나 1959년 35세의 나이에 여덟 살 연하인 이구와 결혼했다.
이후 시부모인 영친왕 부부의 요청으로 63년 한국에 들어와 창덕궁 낙선재 안주인으로 생활했다. 이때 배운 바느질로 ‘줄리아숍’이라는 의상실을 경영하며 복지사업을 계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구와 줄리아 사이에 아이가 없자 평소 파란눈의 세손빈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종친들은 이혼을 강요했고 도일(渡日) 후 연락이 끊긴 남편 이구와 결국 82년 이혼했다.
이혼 후에도 홀로 한국에서 장애인복지사업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던 줄리아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95년 하와이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지난 2005년 타계한 남편의 장례식을 보고자 내한했을 때에도 장례행사에 초대받지 못해 먼 발치에서 운구행렬을 지켜봤던 줄리아는 장례식 후 홀로 이구의 묘를 찾아가 그리워하던 남편과의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혼 후에도 원래 성인 ‘줄리아 멀록’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생을 ‘줄리아 리’로 살았던 그녀는 결국 미국의 한 요양병원에서 쓸쓸하고 고단한 삶을 접고 사랑하는 남편 이구의 곁으로 소풍을 떠났다.
한편 고종의 손자이자 영친왕과 이방자(李方子) 여사의 둘째아들인 이구는 멸망한 황실의 마지막 황세손으로 극적인 삶을 살았다.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이구는 한국전쟁이 나던 1950년, 19세의 나이로 미국에 건너가 MIT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여덟 살 연상인 미국인 줄리아 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대일강화조약’에 따라 일본인에서 한국 국민으로 국적이 바뀌었음에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고국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63년 귀국해 낙선재에 머물렀다.
65년부터는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서 건축설계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66~78년엔 건축설계회사 트랜스아시아를 운영하기도 했다.
73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에 추대되고 같은 해 신한항업 운영에 실패하며 낙선재 생활이 싫다며 돌연 79년 일본으로 떠났다.
82년 줄리아 리와 이혼하고 96년 11월 25일 잠시 귀국했을 당시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생활에 적응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2005년 7월 16일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도쿄 옛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영결식은 같은 해 7월 24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렸으며,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 뒤편 영친왕 묘역에 묻혔다.
아직까지도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 및 ‘황세손’ 지위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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