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건만, 전국민에게 해당되진 않는듯 하다. 갈수록 ‘빵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빵(디저트)를 먹을때 인생의 행복을 논하고 빵을 먹으러 전국을 누비며,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도 한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의 한국(숙명여대)캠퍼스에 매년 제과 제빵을 배우려는 지원자가 늘고있는 것은 이런 트렌드를 대변한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 관계자는 “과거에는 직업교육 차원에서의 지원자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순수하게 빵과 디저트를 좋아해 심도있는 기술을 배우려는 지원자가 늘었다”고 했다.
르 꼬르동 블루는 최고의 요리학교답게 학비 또한 만만치않다. 총 3단계로 이뤄진 제과 디플로마 과정은 2195만원(단계별), 2단계 과정의 제빵 디플로마 과정은 1505만원(단계별)에 이른다.
상당한 학비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원하는 이들이 줄을 선다. 제과 과정은 6~9개월(대기자 80명 이상), 제빵은 3개월~6개월(대기자 40명 이상) 기다릴 정도다.
이처럼 빵ㆍ디저트와 사랑에 빠진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변혜원(39) 씨와 나성창(23) 씨가 대표적이다.
▶‘마약같은 월급’ 버리고 잼 전문가로=변혜원 씨는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17년간 게임업계에 몸담았던 생활을 접고 잼 전문가가 됐으니 말이다.
“엔씨소프트 직원이 단 50명이던 시절부터 다녔어요. 리니지가 성공하면서 게임업계에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죠. 서른 살쯤, 직장생활에 지쳤을 무렵에 베이킹을 시작했어요.”
취미로 하던 베이킹에 빠진 변 씨는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해 제과 과정을 마스터(2012년)했다. 그 많은 수업중 그녀가 꽂힌 과목은 단 한번 뿐이었던 ‘잼’ 수업. 한동안 잼 만드는 직장인으로 살던 그녀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 당시 직장은 CJ E&M 자회사인 넷마블. 팀장으로서 인정받는 능력, ‘마약’같은 월급,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는건 쉽지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생애 꼭 한번은 하고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후 3년전부터 변 씨는 ‘마녀잼’이라는 이름을 걸고 양천구 잼 공방을 운영중이다.
변 씨는 자신이 만든 잼을 두고 ‘수제잼의 혁명’이라 자부한다. 설탕과 올리고당, 인공펙틴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과일 재료로만 잼을 만든다.
“당ㆍ산ㆍ펙틴은 잼의 3요소에요. 이 3가지를 일정 비율로 섞으면 겔(gel)화가 진행돼 잼이 되죠. 잼은 ‘너무 달다’, ‘몸에 좋지 않다’는 편견이 많아 건강한 잼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숱한 실험 끝에 과일이 가진 순수 당과 펙틴, 신선한 레몬 3가지만 있으면 충분히 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냈죠.”
변 씨의 새 레시피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급 이었다. 설탕과 인공첨가물을 뺐으니 몸에 덜 미안(?)한 데다가 주문 즉시 매일 만드니 신선도는 말할 것도 없다. 딸기잼 일색이던 기존 잼을 탈피, 여러 과일을 섞은 블렌딩 잼도 개발했다. 루바브(대황)와 사과를 맥주에 숙성시킨 ‘맥주 루바브잼’은 그녀의 야심작이다.
“어느집 냉장고에나 고추장, 된장이 있듯이 다양하고 개성있는 잼을 두루 즐기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프랑스 ‘잼의 여왕’이라 불리는 크리스틴 페흐베흐처럼 잼 전문가가 돼 전세계 사람들이 제가 만든 잼을 즐기는 게 꿈입니다.”
▶빵에 꽂힌 사나이도 있다=소문난 디저트 카페에 가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초(여자 비율이 압도적)라는 점. 그런데 “남자도 디저트(빵) 좋아합니다”라고 외치는 사나이가 있다. 나성창 씨다.
“2년전부터 빵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보통 제 친구(동성)들 취미생활이 게임이나 운동인데 전 ‘빵지순례’라고 할 수 있죠.”
나 씨는 대학 휴학 중인 공익근무요원이다. 아무리 힘들고 우울한 일도 맛있는 빵 하나면 풀린다는 영락없는 빵덕후다.
그는 2년전 빵맛을 알게 되며 덕후의 세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빵으로 쓰는 돈은 10만원 가량. 밥은 걸러도 빵을 먹는다. 아니 이 정도면 빵 주식이다.
“‘빵생빵사’라는 빵 커뮤니티를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전국 빵투어를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어요. 요즘은 인스타그램으로 저같은 빵덕후들과 소통해요.”
그의 인스타(@daeng.e) 게시물은 1300여개. 거의 모든 사진이 빵과 디저트다. 아름다운(?) 빵의 자태를 알리고자 모든 빵은 정갈하게 갈라 속을 보여준다. 크림, 단호박, 치즈 등 부재료가 튼실한 빵이 요즘 대세다.
“소집해제가 얼마 안남았어요. 이제 빵먹으러 더 열심히 다닐 것 같아요. 6월에는 오사카, 교토에 빵 투어도 갑니다.”
그는 100세 시대를 준비하며 앞으로 전공(경영)을 살리더라도 빵과 관련된 일을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먹는 것을 넘어 조만간 빵 만드는 일도 배울 생각이다. 빵심 좀 내려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 목록을 부탁했다.
“유명한 곳 보다는 덕후들 사이 인정받은 곳들이 있어요. 서울 ‘소울브레드(우면동)’, ‘브레드덕(상도동)’, 초이고야(군자), 죽전 ‘마더스오븐’, 대전 ‘아빠의 꿈’ 이에요. 꼭 한번 드셔보세요.”
김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