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이래 우리와 가장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나라가 미국이다. 두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두 나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이내 알 수 있다. 국토·인구·경제 등의 양적 규모, 과학기술을 비롯해 거의 모든 분야의 질적 수준이 그러하다. 더 나아가 국가-사회 관계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가운데 미국이 ‘약한 국가, 강한 사회’라면, 한국은 ‘강한 국가, 약한 사회’의 전형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우리 사회의 역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더 이상 군사 쿠데타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며, 공익의 이름으로 사유지를 마구잡이로 수용하거나, 특정 지역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국가중심의 나라임을 입증할 사례를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싱크탱크가 한 예다. 이달 1일로 창립 100주년이 된 미국 ‘부르킹스연구소’는 부르킹스(Robert S. Brookings) 등의 재력가들에 의해 탈정파적인 ‘정부조사연구소’로 설립됐다. 사립임에도 1920년대에 ‘예산회계법’ 제정을 비롯해 수많은 행정개혁을 이끌어 내고, 행정학 교재로도 쓰이는 탄탄한 연구보고서를 다수 출간했다. 우리 경우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연구소들은 즐비하되, 사립 정책연구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단기적이고 사적인 목적을 위해 설립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부르킹스연구소나 일본의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같은 조직들이 지향하는 이념은 있다. 아니 특정 이념의 실현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립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특정인이 개인적 목적을 위해 그 조직을 이용하거나 연구 내용을 간섭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100년은커녕 수년 안에 신망을 잃고 문을 닫았을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국가중심의 나라임을 알 수 있는 다른 사례 하나는 최근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관련 의혹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전경련’이다. 이 조직이 회원 기업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운영자들의 (때로는 부당한) 요구를 챙기는 조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전경련은 애초에 국가가 대기업들의 ‘정상조직(peak organization)’으로 기획해서 만든 조직이다. ‘5.16’을 주도한 박정희 소장이 일본에서 귀국을 망설이던 이병철 회장을 설득해 귀국시키고, 반도호텔에서 만나, 전경련을 만들어 국가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비사가 전해 온다. 소위 ‘미국예외주의’는 이와 같은 국가 코포라티즘 조직이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선경그룹의 최종현 전 회장은 1970년대 초에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워 그동안 수백 명의 학자 양성에 기여했다. 몇 년 전 사석에서 교수 한 사람이 그의 업적에 대해 언급하자, 마침 자리를 같이 했던 선경의 임원 한 사람이 “그 장학사업 때문에 선경이 더 클 수 있었는데 장애가 됐다”고 정색으로 반박하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최 전 회장이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을 들였다면 더욱 빛이 날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롯데그룹의 신격호 총괄회장은 빈농 출신의 재일교포 청년 시절에 ‘롯데 검’을 만들어 일본 시장을 제패한 입지전적 창업가의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다. 그의 말년이 아름답지 못하게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한창 전성기에 그가 사재를 털어 한국의 부르킹스연구소나 마쓰시타정경숙을 세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국가중심성이 전체주의 국가들과 비교할 수준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도 국가주의가 지나치면 다양한 아이디어의 창발이 이뤄지기 어렵다. 현 행정부가 내건 ‘창조 경제’가 시원찮은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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