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내달 가상자산 과세 고시안 발표
기타소득 범위·손실 이월공제 등 쟁점
유예 청원 또 5만명 돌파…국회 논의 재점화
과세 첫 신고 한 달 전 총선…정치적 부담 가중
“크립토 빙하기에 손실” 청년층 조세저항 우려
[헤럴드경제=경예은·유혜림 기자] 국세청은 내년 1월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목표로 구체적인 과세 기준을 담은 고시안을 내달께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예정대로 과세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두 차례에 걸친 국민동의청원과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업계와 정치권에선 과세 인프라 미비와 형평성 논란이 거세질 경우 정부·여당이 연말 민심과 국정 지지율을 의식해 또다시 유예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행을 목전에 두고 유예와 폐지 수순을 밟았던 금융투자소득세처럼 ‘금투세 시즌2’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예정대로 과세” 원칙 재확인=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두 차례의 국민동의청원과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반발에도 내년 과세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가상자산 소득 중 기본공제액 25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는 기타소득세 20%와 지방소득세 2%를 합친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를 위해 국세청도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오는 10월께 과세 기준을 담은 고시안 발표를 준비중이다. 고시안에는 기타소득의 범위와 손실 이월공제 여부 등 업계가 제기해 온 주요 쟁점에 대한 과세당국의 판단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고시안에 담길 과세 범위와 함께 약 30억원을 투입해 구축 중인 ‘가상자산 통합분석시스템’이 실제 어느 수준까지 과세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2월 가상자산 거래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 용역을 발주한 바 있다. 당시 공개한 사업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국세청은 오는 10월까지 시스템 구현과 단위 테스트, 성능 시험을 마치고 11월부터 시범 운영과 사용자 교육에 들어갈 계획이다.
해당 통합분석시스템에는 거래소와 개인지갑 사이의 가상자산 이동 내역뿐 아니라 해외금융계좌 신고자료와 온체인 거래정보를 연계해 납세자별 거래를 분석하고 취득가액을 산정하는 기능이 담긴다. 이더리움·트론 원시데이터를 직접 수집해 USDT·USDC 등 스테이블코인 거래내역을 추적하는 기능도 포함된다.
하지만 업계에선 취득이나 양도에 해당하지 않는 커스터디 예치·해지와 스테이킹 예치·해제도 거래명세서에는 인입·이전으로 기재할 수밖에 없어 취득가액 산정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세 인프라를 충분히 정비한 뒤 과세에 나서야 한다는 게 업계의 요구다.
아울러 국세청은 수개월 전부터 주요 가상자산의 블록체인 거래정보를 직접 수집·분석할 수 있는 온체인 노드를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통해 개인지갑과 디파이 프로토콜을 거친 자산 이동을 추적할 기반은 마련했지만, 지갑의 실제 소유자와 거래 성격, 최초 취득가액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파이도 과세한다는 원칙과 실제 과세 집행 역량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과세 시행에 따른 시장 충격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15일 인사청문회에서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 “시간을 상당히 미뤄 놓은 상황”이라며 “지금 출발하는 게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계를 점검해 보니 전체의 85%가 보유한 자산 규모가 500만원이 안 된다”며 “만약 (취득가액을) 증명하지 못해 별도의 가격을 발견하기 어려우면 번 돈의 50%까지 필요경비로 인정한다. 기본공제금액이 250만원인 만큼 이분들은 대체로 면세점에 있거나 세 부담이 미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 청원 5만명 돌파=정부의 확고한 입장과 달리 정치권과 시장에선 미묘하게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내년 1월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100여일 앞두고 2년 추가 유예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14일 법정 동의 요건인 5만명(15일 기준 5만1988명)을 넘어서면서 과세 유예 논의에도 다시 불이 붙는 모습이다.
국민동의청원은 공개된 날부터 30일 이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받는다. 상임위에 회부되더라도 법적 구속력은 없다. 다만 야당이 이미 과세 유예 법안을 발의한 데다 국민동의청원이 두 번째로 소관 상임위에 회부된 만큼 국회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렇다 보니 과세 논란이 확산할 경우 정부·여당이 연말 민심과 국정 지지율을 의식해 또다시 유예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내년 발생 소득에 대한 첫 신고·납부가 2028년 5월로, 한 달 전 총선이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과세 문제가 다시 정치적 판단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금융투자소득세도 과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연말 민심과 선거를 앞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유예와 폐지 논의를 거듭했다”며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최근 분위기를 보면 ‘금투세 시즌2’가 겹쳐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와 정치권에선 주요 투자층인 2030 청년 민심이 과세 시행 여부를 가를 주요 변수로 꼽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시장 하락으로 손실을 본 20~40대 투자자가 적지 않고, 일부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주식·레버리지 상품으로 옮겨가거나 추가 대출까지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과세를 강행할 경우 조세 저항이 확산하면서 청년층 민심과 지지율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국민동의청원인도 과세 인프라를 정비할 때까지 가상자산 과세를 2년 더 유예해야 한다면서 “청년층 표심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가상자산 투자자의 50%가 30대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가상자산 과세는 현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방향에 명확히 역행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 시행 시점에 맞춰 과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른다.
다양한 유형의 가상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기존 ‘기타소득’ 체계에 일률적으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는 자산별 취득·거래 구조와 수익 실현 방식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가상자산 생태계와 자산 유형을 법률로 먼저 명확히 정의한 뒤 이에 맞는 별도의 과세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과세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면 투자자들이 국내 거래소를 떠나는 ‘머니무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특히 해외 거래소에서는 토큰화 주식, ETF형 상품, 레버리지 상품 등 국내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상품을 이용할 수 있어 자금이 한번 빠져나가면 국내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국세청은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관심이 높아지자 공개적인 행보를 자제하는 등 신중한 분위기다. 당초 관련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공식 위촉식을 열 계획이었지만 이를 철회하고, 현재는 전문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의견을 청취하는 방식으로 자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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