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대륙아주 ‘노동·안전법제포럼’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
괴롭힘으로 질병·사망 시 중대재해 인정
하급자도 관계 우위 이용하면 가해자
[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단순한 개인 간 갈등이 아니라 기업이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할 법적·조직적 리스크로 봐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최근에는 하급자가 집단이나 관계상 우위를 이용해 상급자를 괴롭히는 사례도 늘고 있는 만큼 직급과 관계없이 조직 전체를 대상으로 예방·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16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 공동주최로 열린 ‘중대재해예방 노동·안전법제포럼’ 초청강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유해·위험요인이자 중요한 리스크”라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후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사전에 진단하고 예방·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최신 사례를 통해 본 직장 내 괴롭힘의 쟁점과 실무적 대응’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최 교수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초빙연구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가 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부산·대전고용노동청 직장 내 괴롭힘 전문 판단위원회 위원과 강원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심판)을 맡고 있다.
먼저 최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기업의 산업안전 리스크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행위자가 회사 내 관리자나 보직자라면 회사가 적극적으로 예방·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며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도 함께 배상 책임을 질 수 있어, 사전 예방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직장 내 괴롭힘은 조직 갈등을 넘어 중대재해 리스크로도 작용한다고 봤다. 최 교수는 “괴롭힘으로 인해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인과관계가 있는 질병을 얻게 되면 중대재해로 판단될 수 있는 만큼, 사업장 차원의 사전 예방과 위험요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 구도였던 ‘상급자 가해·하급자 피해’에서 벗어난 사례도 늘고 있다. 최 교수는 “전형적인 유형은 상급자가 하급자를 괴롭히는 것이지만 요즘에는 하급자가 상급자를 괴롭히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하급자는 집단·다수이고 상급자나 보직자는 개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단과 다수에서 오는 관계상의 우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판례에서도 형식적인 직급보다 ‘관계의 우위’를 폭넓게 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 교수는 하급자가 상급자의 호칭을 폄하하거나 모욕하고, 이간질하거나 노조 가입을 권유한 행위 등이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를 제시했다. 또 회사 내 평판이나 여론 등을 이용해 사실상 상급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에도 피해 행위의 정도와 반복성 등을 종합해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최 교수는 직장생활에서 겪는 모든 불쾌감이나 갈등을 괴롭힘으로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괴로움은 괴롭힘이 아니다”며 “괴롭힘은 새로운 유형의 불법행위를 법에서 규율한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노동권이나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볼 만한 상당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불쾌하고 불만이 있다고 해서 괴롭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사법적으로 인정되는 판단 기준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할 때는 특정 행동 하나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도 했다. 업무상 필요성이 없는 사적 지시나 심부름 등은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고, 업무상 필요성이 있더라도 폭언이나 모욕 등 사회 통념상 적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면 상급자가 업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결재를 반려하거나 수정·보완을 지시한 것처럼 업무상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편, 신고권 오·남용에 대해서도 기업이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교수는 “법은 신고권을 폭넓게 보장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신고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실업급여 수급을 목적으로 괴롭힘 신고를 하겠다고 압박하거나, 자신의 징계를 모면하기 위해 허위 신고와 증거 조작을 한 경우에는 징계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최고경영자의 근절 의지를 명확히 하고 취업규칙과 사내 규정을 정비하는 한편, 조직문화와 업무수행 방식, 반복 발생 부서·직군·연령대 등을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 교육도 개념 설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규정과 금지행위, 신고·조사·조치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히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차원의 문제”라며 “조직의 소통 방식과 리더십, 업무분장, 권한과 책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조직문화를 진단·개선하는 것이 제도가 지향하는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eyr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