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는 산책로이자 놀이터였다. 시간만 되면 걸었다. 여행을 가도 그 지역의 대형마트를 찾았다. 비나 눈이 와도 상관없었다. 목적 없이 카트를 밀며 매대 사이를 돌았다. 백화점의 물건은 눈으로만 보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형마트에선 망설임 없이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형마트가 추억이고 일상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홈플러스의 몰락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다.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기업회생을 신청한 지 1년 반 만이다. 당장의 파산은 면했다. 하지만 인가는 보증서가 아니다. 시험은 지금부터다.
계획은 이렇다. 점포 중 회사 소유분을 팔아 먼저 갚아야 할 빚을 정리하고, 영업을 이어가는 점포를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아 나머지를 메운다. 마지막 상환은 2030년대 후반이다. M&A도 추진해야 한다. 채권자들 사이에서는 10년을 견디라는 구조라는 말이 나왔다. 우려할 대목은 매각할 점포들이 침체한 지방에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제값을 받기 어렵다. 매각이 늦어지면 상환 일정이 흔들린다. 상환에 동의하지 않은 채권자들이 일시 변제를 요구하면 부담은 다시 커진다.
질문을 되돌려보자. 홈플러스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나. 인수 방식은 차입매수였다. 사려는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사들이는 구조다. 당시 차입 규모가 자기자본을 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그 말이 맞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빚을 갚는 주체가 인수당한 회사라는 점, 그리고 이후 10년의 행보다. 홈플러스는 보유했던 부동산을 잇달아 팔았다. 경쟁력을 키우는 데 써야 할 자산이 빚을 갚는 데 동원됐다. 빚의 규모보다 그 빚이 회사를 어디로 이끌었는지가 중요하다. 홈플러스의 자산은 계속 줄었다. 경쟁사는 매장을 체험형으로 단장했다. 한쪽은 빚을 갚았고, 다른 쪽은 미래에 투자했다.
홈플러스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유통과 외식 시장에서 대형 인수의 주체는 사모펀드가 대다수였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고 부동산을 가진 기업일수록 돈을 빌리기 좋은 담보가 됐다. 사모펀드가 모두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막힌 기업에 자금을 넣어 되살린 사례도 있다. 핵심은 인수 이후다. 얼마를 빌려 샀는지, 인수 후 자산을 어떻게 처분했는지, 그 결과 회사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따질 기준이 헐거웠다.
규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사모펀드의 차입 한도는 몇 해 전, 시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완화됐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다시 조이자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대부분 국회에 묶여 있다. 당국이 내놓은 개선안에서도 한도는 손대지 않았다. 일정 비율을 넘으면 당국에 보고하라는 정도다. 일각에서는 한도를 채워 인수하는 경우가 드물어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한도가 아니라 인수 이후를 봐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자산을 어떻게 처분하는지, 배당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보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홈플러스에 남은 과제는 둘이다. 하나는 빚을 갚는 동시에 수익성이 낮은 점포를 파는 일이다. 실패하면 홈플러스는 파산한다. 다른 하나는 헐거운 잣대, 즉 규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제2의 홈플러스가 나오지 않기 위한 장치다. 홈플러스의 회생 인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누군가의 산책로가 사라질지, 남을지가 여기서 갈린다. 오프라인 매장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할 전환점이기도 하다.
정찬수 소비자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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