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6개월에도 절차 ‘공전’

포스코, 상견례 나흘 뒤 집행정지·행정소송

“기초사실 소명하면 공고·잠정교섭 개시”

연합대표단·원하청 공동교섭단 구성도 제안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청교섭을 방해하는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왼쪽부터 김태욱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김상은 민변 노동위원장. [이용우 의원실 제공]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청교섭을 방해하는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왼쪽부터 김태욱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김상은 민변 노동위원장. [이용우 의원실 제공]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원청의 사용자성을 둘러싼 노동위원회 심판과 행정소송이 진행되더라도 정보 교환과 의제 확인 등 잠정교섭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최종 판정 때까지 교섭을 중단하면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사실상 소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공동 개최한 ‘원청교섭을 방해하는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금속노조 소속 77개 지회가 25개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 교섭이 진행되는 사업장은 CTR과 서진산업, 포스코 등 3곳에 그쳤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삼호중공업, 현대제철, 한국타이어 등 4곳은 본교섭에 앞선 실무협의를 진행 중이다. 나머지 상당수 사업장은 원청의 교섭 불응이나 노동위원회·법원 절차, 교섭 의제와 참여 주체를 둘러싼 이견으로 교섭을 시작하지 못했다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지난해 9월 공포돼 올해 3월 10일 시행된 개정 노조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해당 범위에서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좌우하면 원청도 관련 의제에 대해 교섭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원청이 사용자성을 부인하고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으면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해야 한다. 원청이 초심 결정에 불복하면 중앙노동위원회 재심과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섭단위 분리·통합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도 중단된다.

노동위 결정 뒤에도 소송…교섭 개시까지 ‘산 넘어 산’

민주노총이 공개한 기업별 교섭 현황을 보면 포스코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8일 교섭단위를 분리하도록 결정했다. 포스코가 재심을 신청했지만 중노위는 6월 17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7월 14일 노동쟁의 조정중지 결정과 8월 14일 원청교섭 상견례까지 이어졌지만, 포스코는 나흘 뒤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오션은 3월 18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면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만 기재하고 웰리브지회를 제외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3월 27일 확정공고 시정을 결정했고 중노위도 6월 15일 초심을 유지했지만, 한화오션은 웰리브지회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동희오토도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교섭단위 분리와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결정에 불복해 중노위 재심을 거친 뒤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에 나섰다. 중노위는 지난달 13일 교섭단위 분리에 관한 초심 결정을 유지했다.

공고 절차를 마친 뒤 본교섭의 전제조건을 놓고 공방이 이어지는 곳도 있다. HD현대중공업은 3월 21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확정했지만 조합원 소속 업체명과 업체별 조합원 수 공개, 교섭 장소와 교섭위원 유급 처리, 교섭 의제 등을 둘러싼 이견이 이어졌다.

HD현대삼호중공업 역시 3월 28일 공고 절차를 마쳤지만 교섭 기본원칙 합의와 의제 조정, 조합원 소속 업체 및 인원 공개 등을 본교섭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현대제철은 노조가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취하한 뒤에도 교섭 대상 지회와 하청업체의 참여 여부를 놓고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기초사실 소명하면 잠정교섭”…중층적 교섭구조도 제안

전문가들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최종 확정하는 절차와 실제 교섭을 시작하는 절차를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심과 행정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 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청노조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기초사실을 일단 소명하면 노동위원회가 공고와 잠정교섭에 필요한 ‘절차적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도급계약과 원가 산정, 예산 편성, 인력계획 등 핵심 자료가 원청에 집중돼 있는 만큼 원청이 관련 자료를 제출해 지배·결정 권한이 없다는 점을 반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잠정교섭에서는 정보 교환과 의제·참여 주체 확정 등을 먼저 진행한다. 원청이 특정 의제에 대한 지배력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면 해당 의제를 교섭 범위에서 제외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반증하지 못하면 교섭을 계속하는 방식이다. 잠정교섭 참여 자체가 원청 사용자성을 최종 확정하거나 단체협약 체결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고 시정 단계부터 노조에 본안 수준의 입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작업지침과 내부 승인체계, 시설관리권, 예산권 등 사용자성 판단 자료가 원청에 집중돼 있는 만큼 노조가 원청의 지배·결정 권한을 일단 소명하면 교섭을 시작하고, 구체적인 사용자성과 교섭 의무 범위는 이후 본안 절차에서 확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교섭단위와 참여 주체를 정하는 방식도 개선 과제로 꼽혔다. 정부 매뉴얼은 원청의 공통된 지배·결정 권한이 미치는 ‘전체 하청근로자 집단’을 교섭단위 판단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업체와 사업장 소속 노동자를 일률적으로 하나의 교섭단위로 묶으면 교섭대표의 권한이 원청의 실질적인 권한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안으로는 복수 하청노조가 연합교섭대표단을 구성하고 원청과 관련 하청업체도 공동교섭단으로 참여하는 중층적 구조가 제시됐다. 도급단가와 물량, 적정인력, 공정·설비, 안전기준 등 원청이 결정하는 공통 사안은 기본교섭에서 다루고, 개별 하청업체의 임금배분과 근무편성·인사관리 등은 보충교섭에서 정하는 방식이다.

김태욱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부 해석지침이 원청 사용자성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구조적 통제’가 법률에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원청이 임금이나 근로시간을 직접 정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도급단가와 물량, 인력 규모, 작업방식 등 근로조건을 좌우하는 요소를 누가 실질적으로 통제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론회에서는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원청에 대한 노동부의 이행지도와 부당노동행위 수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노동부의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은 원청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방고용노동관서가 이행을 지도하고, 불응할 경우 교섭 거부·해태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로 사법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6개월…원청 456곳 문 두드렸지만 교섭은 102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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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됐지만 현장의 혼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청노조가 원청 456곳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실제 교섭에 들어간 곳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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