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 “다른 언어기호와의 차이가 고유의 시니피에 형성”
‘정부’와 ‘단체’의 차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
‘단체’에서 ‘정부’로 승격은 ‘지방분권’ 지향하는 정부 기조의 풍향계 역할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1. “폭우 속에서 주민 대피를 결정하고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재난 예방과 대응의 최일선 책임자다.”
#2. “양국 ‘지방정부’와 정부기관, 기업 등이 참여해 ‘지방정부’ 간 교류를 실질적인 경제·산업 협력으로 확대하기 위해…”
정부 중앙부처와 관련 공공기관이 작성한 문서를 보면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다. 문맥상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굳이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실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구조주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언어기호를 기능적 측면에 따라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과 시니피에(signifié, 기의)로 구분했다. 기표는 ‘표시하는 것’, 기의는 ‘표시되는 것’을 뜻한다.
소쉬르는 언어를 어떤 실체라기보다 형식으로 보면서, ‘그 자체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된 자율적 체계’로 이해했다. 언어기호는 본원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언어체계 안에서 다른 언어기호들과 맺는 차이와 관계를 통해 고유한 의미, 즉 기의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다시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 돌아가 보자.
국립국어원은 ‘지방정부’를 “지방 자치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앙 정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또는 “연방제 국가에서 연방을 구성하는 각각의 자치 정부를 중앙 정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지방자치단체’를 “특별시·광역시·도·시·군과 같이 국가 영토의 일부를 구역으로 하여 그 구역 내에서 법이 인정하는 한도의 지배권을 소유하는 단체”라고 정의한다.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두 단어가 혼용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10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를 앞으로 ‘지방정부’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지방정부는 또 하나의 주권 단체로, 그것을 지자체라고 해서 계 모임이나 임의 단체처럼 만들면 안 된다”며 “배려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주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스스로 통치하는 실습을 하는 공간이 지방정부인데 폄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옛날 독재정권 시절 지방정부를 없애다시피 하면서 일부러 그런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윤 장관은 “앞으로 지방정부라고 호칭하며 지방에도 주민주권 시대를 열 수 있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정부 차원의 통일된 용어 사용 지침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지침이 내려온 바는 없다”며 “기존 법률이나 규정에 따라 문서에는 ‘지방자치단체’를 쓰고 있고, 일반적인 통칭으로는 ‘지방정부’를 쓰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통일된 지침이 마련된다면 실무자들이 용어를 놓고 고민할 필요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왜 두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지 관계자에게 다시 물었다. 돌아온 답은 ‘헌법 개정 사항’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헌법 제8장 ‘지방자치’는 제117조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종류’를, 제118조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을 규정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서 지방자치를 담당하는 주체를 명시적으로 ‘지방자치단체’라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법률과 제도를 바꾸지 않고 정부가 명칭만 일괄적으로 변경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결국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차이는 단순한 말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는 중앙정부에 대응하는 ‘정부’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법률이 정한 조직과 권한을 가진 ‘단체’라는 제도적 성격을 강조한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일이 곧바로 지방분권의 실질적인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그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라고 부르자는 제안은 단순한 명칭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재명 정부는 ‘5극3특’ 구상과 함께 세종시의 ‘행정수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와 같은 모습이 될지, 호주 캔버라와 같은 모습이 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정부가 사실 관계 확인을 못 해 줄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다만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정부라면,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이 용어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날 필요가 있다. 법률상 명칭과 행정 현장에서의 호칭이 서로 다른 채로 혼용되기보다는, 지방의 권한과 위상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함께 용어 역시 한 방향으로 정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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