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오는 9일 개막하는 파리 국제우주정상회의에 미국의 우주기업 4곳이 불참하기로 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블루오리진, 로켓 제조업체 스토크스페이스, 스타클라우드 등 핵심 우주 기업들이 불참을 선언한 데에는 우주 분야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프랑스의 ‘자강론’을 못마땅하게 여긴 백악관의 압박이 있었다는 전언이 나온다. 이 외에도 ‘프레너미(frenemy,친구이자 적)’ 관계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크롱 깎아내리기’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3일(현지시간) 4개 미국 기업이 행사 참석을 취소한 배경에 대해 프랑스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백악관의 압력 때문이라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압력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 소문과 연관 짓지 않기는 힘들다”라며 “전략적 변동과 정치적 압박으로 때때로 일이 불필요하게 복잡해지더라도, 우리는 미국 파트너 및 동맹국과 계속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주 분야에서 유럽이 미국 기술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 위성 발사 역량 등을 갖춰야 한다는 ‘자강론’ 내세우는 인물이다. 이번 행사도 유럽 자강론을 구축하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백악관이 해당 기업들에 “행사에 참석하면 이 같은 유럽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라는 이유를 들어 불참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이 유럽 자강론 견제와 자국의 산업 안보를 감안해 기업들에 불참을 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크롱의 역점 사업에 힘을 빼려는 트럼프의 의중이 있다는 게 세간의 전언이다.
마크롱과 트럼프는 둘 다 우파 성향의 경제 정책을 내세우고 ‘강한 리더’를 자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은 2017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때까지 손 쥐어짜는 ‘악수 배틀’로 기 싸움을 벌인 것이 유명하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악수를 하기로 유명한데, 마크롱이 이에 당황하지 않고 강한 힘으로 트럼프의 손을 움켜쥐며 응수했다. 두 사람이 턱을 앙다물며 6초간 악수를 하는 기 싸움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기 싸움 이후 둘은 서로를 자신과 꼭 닮은 ‘만만치 않은 상대’로 인정하며 독특한 친밀감을 형성했다. 2018년 워싱턴DC에서 진행한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는 카메라 앞에서 “완벽해야 한다”며 마크롱의 양복 옷깃을 털어주고 “우리는 특별한 관계”라고 프랑스식 볼키스 인사(비주)를 하기도 했다.
마크롱이 보여주는 프랑스의 문화유산을 트럼프가 매우 동경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7년 7월 마크롱이 트럼프를 초대한 파리 혁명기념일 열병식에서 화려한 군사행진을 보고 트럼프가 미국에서도 독립기념일 군사 퍼레이드를 열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트럼프는 미국 독립 250주년인 올해 특별 이벤트로 파리의 개선문과 흡사한 디자인의 개선문을 워싱턴DC에 만드는 사업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정책에서는 극과 극 달리는 경우가 많아, 둘을 적(enemy) 관계라 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파리 기후변화협정 일방적으로 탈퇴하자 마크롱은 트럼프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비틀어 ‘Make Our Planet Great Again(우리 행성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연설을 하며 조롱했다.
트럼프가 집권 2기 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며 미국이 나토를 탈퇴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자 마크롱은 “나토는 뇌사상태”라 정면 비판하며, 나토의 대안인 유럽군 창설을 주장했다.
유럽에서 거센 디지털세 등 빅테크에 대한 제재도 트럼프와 마크롱이 척지게 된 계기다. 프랑스가 구글이나 애플 등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디지털세를 도입하자, 트럼프는 프랑스산 와인과 치즈에 100%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마크롱은 끝까지 다자주의를 지키려 하면서 유럽의 자립·자강을 강조하는 인물로 ‘유럽의 마지막 거물 정치인’이라 불린다. 이런 마크롱의 노선은 정통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미국 우선주의자를 내세워 정계에 돌풍을 일으킨 ‘다자주의의 파괴자’ 트럼프의 노선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행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리 국제우주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한 미국 기업 관계자는 백악관의 불참 압박에 대해 “이것은 너무나 트럼프답다”라며 “그는 유럽인들을 깎아내리기를 좋아한다. 특히 어떤 식으로든 유럽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마크롱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고 폴리티코에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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