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이렇게까지 해서 사진을 찍어야 해?’
손바닥 크기의 한 멸종위기 동물. 입을 강제로 벌리게 한 뒤, 마취도 없이 이빨을 뽑아낸다. 모든 고통을 감당하는 건 이 작은 동물의 몫이다.
끔찍한 일을 부추긴 요인 중 하나는 SNS. 해당 동물을 간지럽히는 한 영상이 세계적으로 퍼지며 ‘나도 키우고 싶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후 불법거래 과정에서 사람을 물 경우 독성 물질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자, 판매자들은 주저 없이 이빨을 뽑고, 잘라내기 시작했다.
SNS 탓에 생이빨까지 뽑히는 동물들. 치아를 잃으면 먹이를 구하는 데 지장을 겪고, 제거 과정에서 발생한 출혈이나 감염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렇게 희생되는 동물의 이름은 ‘슬로로리스(slow loris)’. 큰 눈과 동그란 얼굴, 느릿한 몸짓으로 유명한 영장류다.
한때 SNS를 통해 귀여운 외모가 알려지며, ‘인기동물’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인기 탓에 많은 개체가 잔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도 키우고 싶어” SNS로 시작된 ‘동뭃학대’
국제동물구조단체 국제동물구조(IAR)는 지난 4월 인도네시아 현지 파트너인 YIARI의 슬로로리스 불법거래 장기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여기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10년간 온라인에서 판매 대상이 된 슬로로리스는 최소 4100마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슬로로리스가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SNS. 지난 2009년 온라인에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이른바 ‘간지럼 타는 로리스(Tickling Slow Loris)’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서 사람이 몸을 만지자, 슬로로리스는 양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간지럼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귀여운 모습은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왔고, 주요 영상의 조회수는 1000만회에 육박했다.
영상이 퍼지면서 슬로로리스를 직접 키우고 싶다는 수요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고, 판매업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본격화된 불법 거래 과정에서, 판매상들이 펜치 등을 이용해 마취 없이 이빨을 제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빨이 제거되는 이유는 독을 사용하기 때문. 슬로로리스는 팔 안쪽 분비샘에서 나온 물질을 침과 섞은 뒤,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를 물어 전달한다. 거래를 하거나 키우는 과정에서 인간 부상을 줄이기 위해 미리 이빨을 제거하는 셈이다.
슬로로리스의 앞니는 독을 전달하는 수단인 동시에 먹이를 구하는 데 필요한 생존 도구다. 야생에서는 나무에 구멍을 내고 수액·검질 등 식물 분비물을 먹는다. 거래 과정에서 치아를 제거당한 개체는 정상적인 섭식이 어려워지고, 구조된 뒤에도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무서워하는 동물…귀엽다고 웃는 사람들
유명한 SNS 영상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인기의 계기가 된 영상에서 사람의 간지럼을 즐기는 듯했던 슬로로리스. 하지만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행동은 위협을 받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방어 자세로 알려져 있다. 팔 안쪽 분비샘에 입을 가져가 독성 물질을 이용하기 쉬운 자세다.
사람에게는 즐거워 보였던 모습이었지만, 정작 슬로로리스는 자신을 방어하려 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슬로로리스류가 멸종위기에 처해 국제적인 보호를 받는 동물이라는 것. 지난 2007년 국제거래가 가장 엄격하게 제한되는 CITES 부속서Ⅰ에 포함돼, 야생에서 잡은 개체를 돈을 받고 해외에 파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SNS로 확산된 인기는 반려 수요를 자극했고, 불법 국제 거래도 이어졌다. 이 같은 수요는 서식지 주변 국가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표적인 소비국으로 지목된 곳 중 하나가 일본이다.
지난 2015년 학술지 ‘아시안 프라이메이츠 저널(Asian Primates Journal)’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연구진은 2014년 약 두 달간 일본 내 슬로로리스 거래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일본 온라인 영상 93개에서 반려동물로 길러지는 것으로 보이는 슬로로리스 114마리를 확인했다. 20개 애완동물가게에서는 무려 74마리가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도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등 고가의 ‘반려동물’에 해당했다.
우리나라도 완전히 무관한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16년 부산경찰청은 슬로로리스 등 국제 멸종위기종을 밀수입해 판매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한 업자 등 15명을 적발했다. 태국 등에서 슬로로리스를 국내에 밀반입하다가 적발된 것. 밀수된 동물은 동물카페와 사설동물원 등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돌아다니는 ‘희귀동물 체험수업’에도 동원됐다. 업자들은 시간당 20만원을 받고 어린이들에게 야생동물을 직접 만지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SNS ‘인증사진’ 소비…장난감 된 동물들
다행히 상황이 마냥 악화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간 단속과 구조, 교육 활동이 이어지면서 과거처럼 슬로로리스가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사례는 크게 줄었다.
IAR와 YIARI는 올해 공개한 보고서에서 “불법거래 감소가 법 집행과 구조센터 운영, 지속적인 대중 교육을 함께 추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본 동물들의 삶까지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YIARI의 보전보고서를 보면 2024년 재활시설에서 보호받던 슬로로리스는 91마리였다. 이 가운데 81마리는 치아 제거 등을 포함한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상태였다.
인간에게 팔기 위해 이빨을 제거하는 행위가, 구조 이후에도 야생 복귀를 막는 족새가 된 셈이다.
아울러 공개적인 거래는 줄어들었지만, 온라인 거래는 더 은밀한 방식으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 야생동물단체 Garda Animalia의 모니터링 자료에서도 슬로로리스를 포함한 5개 위협받는 동물군의 판매 광고가 2020~2025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에서의 ‘인증샷 소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태국 야생동물보호단체 WFFT는 2024년 말 푸껫 등에서 슬로로리스를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용 소품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다시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영장류’가 반려동물로 유행…“좋아요 누르지 말아야”
더 큰 문제는 SNS를 통해 야생동물이 ‘귀여운 반려동물’로 소비되는 일이 슬로로리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영장류를 반려동물로 소개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며, 실제 판매까지 이뤄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등이 올해 5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페이스북·인스타그램·틱톡·유튜브 등을 불과 6주간 조사한 결과 1131개 게시물에서 살아 있는 영장류 1614마리가 판매 대상으로 등장했다.
연구진은 SNS가 단순히 야생동물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이들을 ‘반려동물’처럼 보이게 만들어 수요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보고서는 대표 사례로 ‘간지럼 타는 슬로로리스’ 영상을 언급하며, 야생 영장류가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콘텐츠가 ‘나도 키우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WF·IFAW는 “영장류를 반려동물로 구매하지 말고, 반려동물로 등장하는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같은 행동이 게시물의 노출을 키우고, 슬로로리스 등 야생동물을 소비하는 모습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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