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야차룰 전국 대표사례 23건 분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된 야차룰 관련 영상 콘텐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된 야차룰 관련 영상 콘텐츠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1. “재미없다, 다시 싸워.”

지난해 8월 세종시에 있는 한 건물 지하 주차장. 중학생 두 명의 몸싸움을 지켜보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25초 만에 싸움을 끊었다. 재미없다며 다시 싸우라는 요구였다. 고등학생의 요구에 싸움은 격해졌고 참여한 학생은 이후 얼굴을 반복해서 맞아 코뼈가 골절됐다.

#2. “인원수만 맞춰주라 했는데….”

지난해 4월 경기도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친구에게 ‘야차’ 인원수만 맞춰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갔다가 구경꾼 20여명을 보고 달아났다. 그러나 학교로 찾아가 때리겠다는 협박에 돌아와야 했다. 싸움을 거부하자 무릎을 꿇거나 현장에 모인 사람 모두의 택시비를 내라는 요구가 돌아왔다. 가해 학생은 법적 책임을 묻거나 신고하지 않겠단 동의 영상을 찍은 직후 피해 학생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학생들이 ‘야차’라고 부르는 싸움 뒤에는 상대를 불러내고 싸움을 재촉하며 카메라를 드는 학생들이 있다. 거절하는 학생에게도 싸움을 강요한 뒤 ‘서로 합의했다’는 영상을 남겼다. 당사자끼리 겨루는 놀이처럼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학생이 싸움을 부추기고 촬영하는 학교폭력이었다.

싸움 영상은 또래 사이의 볼거리를 넘어 돈벌이 수단으로도 이용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미공개 영상을 내세워 불법도박사이트 가입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제공한 전국 ‘야차룰’ 관련 학교폭력 대표사례를 헤럴드경제가 분석한 결과 싸움 강요와 촬영·유포, 신고를 막는 협박이 맞물리는 구체적인 양상이 확인됐다. 야차룰은 규칙이나 보호장구 없이 싸우는 방식을 뜻하는 변종 격투 방식이다. 경찰은 ‘실제 폭력을 놀이나 격투처럼 정당화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온라인에는 “쌍방이 합의해 싸우기 때문에 야차룰로 싸우다 다쳐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식의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도 올라온다.

‘야차룰’ 관련 학교폭력 대표사례.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AI로 제작]
‘야차룰’ 관련 학교폭력 대표사례.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AI로 제작]

싸움은 강요, 신고는 막는다…합의로 포장한 학폭 ‘야차룰’

하지만 야차룰은 교묘하게 진화한 신종 학교폭력이다. 가해 학생들은 이를 그저 싸움 대련, 일종의 약속된 놀이로 정당화한다. 하지만 싸울 의사가 없는 상대방에게 싸움을 강요하고 대결 장면을 일방적으로 촬영한 뒤 ‘미리 합의했다’는 이유로 신고까지 막는 행태를 보인다.

올해 서울에서는 중3 학생들이 얼굴과 머리를 때리지 않고 항복하면 멈추기로 했지만 피해 학생은 안경을 낀 얼굴을 맞아 치아를 다쳤다.

주변 학생들은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피할 길을 막는 일도 있었다. 올해 7월 부산에서는 어깨가 부딪쳤다는 이유로 중3 학생에게 싸움을 요구했다. 싸우지 않으면 무릎을 꿇으라고 하더니 다른 학생은 이제 무릎을 꿇어도 소용없다며 심판을 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구경꾼이 모이면 압박은 더 커졌다. 올해 2월 대전의 중2 학생은 상대방 외에 2명만 나온다는 말을 듣고 공원에 갔지만 현장에는 약 30명이 모여 있었다. 주변에서는 싸움을 재촉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흩어졌던 이들은 경찰이 떠난 뒤 다시 모여 피해 학생을 폭행했다. 두 번째 경찰 출동 뒤에야 상황이 끝났다.

이 과정에서 싸움을 강요해 놓고도 ‘서로 동의했다’는 증거를 따로 남겨 피해자를 협박한다. 도망간 피해 학생을 협박해 돌아오게 한 뒤 신고하지 않겠다는 영상을 찍고 때리는 사건도 있었다.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에게 먼저 욕설을 하도록 시켰고 폭행 뒤에는 그 욕설을 사과하는 영상까지 찍게 했다. 카메라에 담긴 동의와 사과만 봐서는 앞서 벌어진 협박과 강요를 알기 어려웠다.

신고하지 못하게 약속을 받아내는 일도 있었다. 전남의 한 사건에서 피해 학생은 ‘야차 뜨기, 그냥 맞기, 무릎 꿇고 뺨 맞기’ 중 하나를 고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른 사건에서는 여러 학생이 “싸워야 집에 갈 수 있다”며 싸움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해 학생들은 일관적으로 서로 합의한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학생 비율은 2.9%로 지난해보다 0.4%포인트 높아졌다. 학교급별 피해응답률은 초등학교 5.7%, 중학교 2.3%, 고등학교 0.8%로 모두 상승했다. 피해 유형 가운데 신체폭력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5.7%로 지난해보다 1.1%포인트 커졌다.

힘이 센 학생이 약한 학생들을 모아 싸움을 붙이고 이를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거나 영상을 판매하는 이른바 ‘야차룰’ 형태의 학교폭력이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학생들 간 대치하는 모습. [AI로 제작]
힘이 센 학생이 약한 학생들을 모아 싸움을 붙이고 이를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거나 영상을 판매하는 이른바 ‘야차룰’ 형태의 학교폭력이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학생들 간 대치하는 모습. [AI로 제작]

맞는 모습이 구경거리로…협박·돈벌이 영상 유포도

피해는 싸움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폭행 장면이나 강제로 사과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 다른 학생들에게 전달되면서 피해 학생은 또래의 구경거리가 됐다. 싸움에 참여하도록 압박하던 카메라가 이후에는 학교폭력을 퍼뜨리는 도구가 된 것이다.

대전 사건에서는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이 피해 학생을 제외한 단체 대화방에 공유됐다. 관련 학생은 이후 처벌이 두려워 영상과 대화방을 삭제했다. 대구에서는 여자 탈의실에서 중3 학생들이 싸우는 모습을 찍어 다른 학생에게 전달했고 이를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재생한 사례도 있었다.

싸움을 거부해도 촬영을 피하지 못했다. 전남에서는 초6 피해 학생이 싸움 요구를 거절하자 무릎을 꿇고 사과하도록 시킨 뒤 그 모습을 촬영·유포했다. 폭행을 당하는 모습뿐 아니라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받는 장면까지 영상으로 남았다. 피해 학생에게는 누가 영상을 봤는지,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도 남을 수 있다.

영상이 추가적인 금전 요구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경찰청은 싸움 영상을 내려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공갈·협박 유형을 경고하고 있다. 돈을 보내지 말고 대화와 요구 내용을 증거로 남겨 신고하도록 안내한다. 영상을 가진 사람이 삭제 여부를 쥐고 피해 학생을 다시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싸움 영상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례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일부 텔레그램 채널은 야차 영상에 불법도박사이트 링크를 붙이고 제휴 사이트에 가입하면 미공개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자극적인 싸움 장면으로 이용자를 모은 뒤 도박사이트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폭력 영상이 또래 사이의 공유를 넘어 외부의 수익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야차룰 관련 영상에 괴로워 하는 학생. [AI로 제작]
야차룰 관련 영상에 괴로워 하는 학생. [AI로 제작]

때린 학생 처분으로 끝?…영상 유포·보복까지 막아야

야차룰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합의했으니 괜찮다’는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싸움을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받아낸 동의가 신고를 막는 구실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학교전담경찰관(SPO) A씨는 “야차룰 자체가 형식적인 합의만 있을 뿐 사실은 강요된 폭력”이라면서 “합의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잘못됨을 교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방교육도 직접 때리는 행위뿐 아니라 싸움을 시키고 촬영·유포하는 행동까지 다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학교폭력예방상담사 박모 씨는 “야차룰 학폭을 신고하면 해당 학생을 문제처럼 몰아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면서 “싸우면 처벌받는다는 경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싸움 약속·촬영·폭행 영상 유포 등 모든 과정이 문제라는 지점을 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관계기관도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과 교육부는 야차룰을 신종 학교폭력 형태로 규정하고 지난달 야차룰 경보(신종 유형 발생경보 제11호)를 발령·전파했다. 야차룰 과정에서 직접 싸우지 않고 이를 주선하거나 방조·촬영한 학생에 대한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률적으로 조치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심의위원들에게 어떻게 전파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영상 유포·판매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대응을 예고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영상을 판매하는 것 자체가 피해 학생을 도구화하는 질이 좋지 않은 행위라고 보고 있다”며 “교육청과 협의해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심의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