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 인터뷰

18~20일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 막올려

고전 해체·언어 한계 넘는 신체극의 장인

“가장 진실한 언어는 즉발적 몸의 언어”

“’오세훈의 아내’ 한때는 굴레, 이젠 환경”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을 다시 올리며 “힘들고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환상이라는 원동력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며 작품의 의미를 되짚었다.  임세준 기자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을 다시 올리며 “힘들고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환상이라는 원동력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며 작품의 의미를 되짚었다. 임세준 기자

무대 위 활자 너머의 심연을 길어 올리는 연출가 송현옥(65)은 다양한 수사로 불린다. 영문학자,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대학교수, ‘신체극’의 선구자….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사는 바로 ‘오세훈의 부인’, ‘시장 아내’ 송현옥이다.

그럼에도 그는 늘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1989년 연극 비평을 통해 공연계에 입문한 이후 후학을 양성하는 선생이었고, 언어와 맥락으로 무대를 해체했으며,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던 창작자였다. 이번엔 대표 레퍼토리인 ‘의자 고치는 여인’(18~20일, 나루아트센터)으로 돌아온다.

개막을 앞두고 서울 용산구 서울시장 공관에서 만난 송현옥 연출가(극단 물결 예술감독)는 주연 배우이자 딸인 오주원의 안면 골절 부상이라는 돌발 악재에도 담담했다. 그는 “플랜 A, B, C까지 세워뒀다”며 “라이브 무대는 늘 변수가 터지나 배우의 강한 의지와 진정성을 믿고 있다”고 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부서진 의자를 고치던 여인의 손엔 삶이 묻어있다. 손가락 마디마디 주름 사이로 갖은 기억이 새겨졌다. 열네 살 소녀 시절, 처음으로 간 약국에서 마주한 ‘약사의 아들’. 소녀의 눈엔 알약이 들어있는 유리병만큼이나 영롱한 세상이 번져간다.

“그 순간 무대 위로 샹들리에가 내려와요.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죠. 삶에서 환상을 꿈꾸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질이에요. 그 환상이 희망이 없는 사람들, 힘들고 소외된 삶을 살았던 이들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요.”

송 연출가는 고전 속에서 늘 ‘오늘의 인간’를 찾았다. ‘인형의 집’에선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현대인을 인형으로 봤고, ‘오이디푸스’와 ‘햄릿, 여자의 아들’에선 진리를 좇는 남성적 세계관과 순리를 품는 여성적 세계관을 교차한다.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의자 고치는 여인’을 각색한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이기는 힘의 근원엔 인간이 있어요. 인간의 보편적인 성질과 내면의 작동 방식, 관계의 역학은 불변하니까요. 고전의 토대 위에서 동시대의 옷을 입히고 오늘의 문제의식을 비춰볼 때, 고전이 가르쳐주는 울림은 무척이나 커요.”

2024년 전국 공연 이후 2년 만에 찾아 온 이번 공연에서 가장 큰 변화는 결말이다. 55년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남자를 무대 끝자락에 세워 화자를 전복한다. 모파상의 원작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남자가 등장해 ‘당신이 본 것만이 진실인가’라고 반문해요. 남자는 화를 내면서도 곁에 선 아내의 눈치를 보며 창밖을 응시하죠. 창밖엔 17세 소녀가 눈을 맞으며 서 있어요. 프레임에 따라 진실은 달라져요. 하나의 시선을 깨부수고 싶었어요.”

사실 ‘신체극(Physical Theatre·피지컬 시어터)’은 송 연출가가 개척한 분야다. 지금은 장르의 탈경계가 ‘대세’가 됐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2008년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를 재해석한 연극이 무대에 오르자 공연계는 발칵 뒤집힐 정도였다.

“언어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상 조각과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선친이 한국 철제 조각 1세대 선구자인 고(故) 송영수 조각가) 구구절절 설명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가장 진실한 언어는 즉발적으로 나오는 몸의 언어라고 생각했어요.”

송 연출가는 2008년 ‘밑바닥에서’ 이후 본격적인 신체극을 선보였으나 국내에선 “난해하고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반응은 달랐다. 2008년 러시아 현지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30년간 체호프만 천착해 왔던 노교수가 찾아와 “체호프의 텍스트 밑바닥에 있던 무의식의 지층을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며 손을 맞잡기도 했다. 그때 그는 회한을 씻어내며 눈물을 쏟았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연기’라는 현지 극장장의 한마디가 한국 연극계에서 느낀 서운함과 안타까움을 털어줬어요. 제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죠.”

그는 차기작에서도 질문을 던진다. 유엔(UN·국제연합) 인권 분야에서 활동한 지인의 경험에서 출발한 창작극 ‘소수 의견’을 준비 중이다. 개인의 기억에서 집단의 기억으로, 기억이 역사를 만들고 각 집단과 국가가 기억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만들어가는지의 틈새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송 연출가는 줄곧 자기 궤적을 올곧게 그려왔지만, 그의 이름 앞엔 늘 오세훈의 아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젊은 날엔 이러한 수사가 돌부리처럼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담담하다. 지난 2월 40년간 지켜온 교단을 떠나며 내면에서 지각변동이 생긴 탓이리라. 연구실을 나오기 전 책상을 어루만지던 순간, 그는 마치 생의 종막을 예행연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연구실을 나설 때 문득 ‘지금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돌아본다.

‘오세훈 아내’, ‘정치인 아내’라는 수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굴레였다면, 지금은 그저 그에게 주어진 하나의 ‘환경’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남편이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라며 “내가 부정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환경에 휘둘릴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 그의 수첩 맨 앞장엔 늘 ‘평범지중 비범(平凡之中 非凡·평범함 속에 깃든 비범함)’이라는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과거엔 비범한 예술혼을 벼려내고자 불면의 밤을 지새웠지만, 이젠 ‘삶의 순리’에 몸을 맡긴다.

“계획성보단 직관이 앞서는 것이 늘 장점이자 단점이었어요. 이제는 직관을 믿고 물 흐르듯 유영하려 해요. 너무 기쁘지도, 너무 슬프지도 않게 살자, 그렇게 물 흐르듯이 살다 간 사람이 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