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모니 대미 공급 올해 240톤 이상 확대
게르마늄 내년 양산
갈륨 2028년 15.5톤 목표
美 통합제련소에 11조원…2029년 순차 가동
美 핵심광물 11종 포함 연 54만톤 생산
정상 가동 땐 연 EBITDA 1조원 이상 전망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중국이 잠근 핵심광물의 문을 한국의 제련 기술로 다시 열고 있다. 고려아연이 안티모니와 인듐에 이어 게르마늄·갈륨까지 생산 영역을 넓히고, 미국에는 약 11조원을 들여 대규모 통합제련소를 짓는다. 중국에 집중된 핵심광물 공급망을 한국과 미국으로 분산시키며 글로벌 ‘광물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 안티모니를 시작으로 갈륨·게르마늄, 텔루륨·비스무트·인듐 등 첨단·방위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잇달아 강화해 왔다. 특정 국가가 생산과 정제를 사실상 장악한 광물의 공급이 흔들리자 미국을 중심으로 비(非)중국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졌다.
중국 밖에서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제련사가 중요해진 이유다. 고려아연은 아연·연 세계 1위의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정광에서 주력 금속뿐 아니라 제련 부산물과 재활용 원료에 소량 포함된 희소금속까지 회수하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은 안티모니다. 국내 유일 생산업체인 고려아연은 지난해 약 4500톤을 생산했다. 지난해 6월 온산제련소에서 생산한 20톤을 처음 미국에 직접 수출한 데 이어 올해는 대미 공급을 연간 240톤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안티모니는 탄약과 군사 전자장비, 항공우주용 합금 등에 쓰이는 전략광물이다.
인듐도 국내에서 고려아연만 생산한다. 지난해 생산량은 97톤으로,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등에 쓰인다. 중국이 글로벌 공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중국 의존 광물이다.
1400억 들여 게르마늄 국산화…내년 고순도 양산
고려아연은 이미 생산하고 있는 광물의 물량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국내 생산 기반이 약했던 품목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게르마늄이다. 야간투시경과 열화상 카메라, 반도체 등에 쓰이는 전략광물로 중국의 공급 통제 이후 가격이 지난해 1분기 ㎏당 약 3000달러에서 올해 2분기 1만1000달러까지 뛰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8월 미국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 규모의 정제설비 투자를 결정했다.
생산 일정도 앞당겼다. 자회사 켐코가 지난달 중간재 생산을 시작했으며 내년 하반기에는 순도 99.999%의 고순도 게르마늄을 상업 생산할 계획이다. 당초 2028년보다 약 1년 빠르다.
갈륨도 다음 차례다. 전력반도체 등에 쓰이는 갈륨은 세계 생산의 약 99%를 중국이 차지한다. 고려아연은 약 557억원을 투자해 온산제련소에 회수 공정을 구축하고 2028년 상반기부터 연 15.5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별도 광산을 개발하는 대신 기존 아연·연 제련 부산물에 포함된 갈륨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같은 원료에서 더 많은 희소금속을 뽑아내 원료 부담을 낮추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온산에서 검증한 기술, 11조 들여 미국으로
핵심광물 전략의 종착지는 미국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함께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대규모 통합제련소를 짓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사업 규모는 약 74억달러(약 11조원)로 고려아연 역사상 최대 해외 투자다.
2029년부터 순차 가동해 연간 약 110만톤의 원료를 처리하고 약 54만톤의 제품을 생산한다. 아연·연·동을 비롯해 안티모니·인듐·게르마늄·갈륨 등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 11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예정이다.
미국으로서는 높은 수입 의존도를 낮출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은 갈륨과 인듐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비스무트와 안티모니도 의존도가 90%를 웃돈다.
특히 계획상 갈륨은 연 54톤, 게르마늄은 44톤을 생산한다. 미국 연간 수요인 각각 19톤과 33톤을 웃도는 규모다.
고려아연은 미국에서 폐영구자석을 활용한 희토류 회수 사업도 추진하며 핵심광물 범위를 넓히고 있다.
美 정부도 인허가 지원…“한미일 공급망 복원”
미국 정부도 힘을 싣고 있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지난 4월 대형 인프라·자원 사업의 인허가를 지원하는 ‘FAST-41’ 대상으로 지정됐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프로젝트를 미국에 “변혁적인 거래”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 측이 참여한 크루서블JV는 고려아연 지분 10.6%도 확보했다. 단순히 미국 내 공장 하나를 세우는 것을 넘어 양국이 지분과 공급망을 함께 묶는 구조다.
사업성이 뒷받침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정상적으로 완전 가동될 경우 연간 1조원 이상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망 안보를 위한 투자가 향후 대규모 신규 이익원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이 미국에 옮겨 심으려는 것은 단순한 제련 설비가 아니다. 온산제련소에서 수십 년간 쌓은 복합제련과 유가금속 회수 기술을 활용해 중국에 집중된 핵심광물 생산 구조의 대안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세기 제련기술, 사모펀드 회수 논리에 흔들릴라
관건은 이런 장기 전략이 경영권 분쟁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느냐다. 게르마늄·갈륨 생산설비부터 11조원이 투입되는 미국 통합제련소까지 핵심광물 사업은 수년간 선행투자가 필요하다.
그간 MBK·영풍 측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경영권 방어용’이라고 비판하며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관련 이사들은 이사회에서 크루서블 관련 6개 안건에 모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이 같은 공방이 소송전으로 번지면서 2024년 9월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이후 양측이 제기한 관련 소송도 30여 건에 달한다.
고려아연의 장기 공급망 계획이 흔들릴 경우 철강·자동차·반도체·방산·이차전지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2021년 요소수 사태처럼 특정 소재의 공급 병목이 산업 전반의 생산 차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투자금 회수가 우선되면서 장기간 축적한 제련 경쟁력과 핵심광물 투자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광물 공급망은 국가 산업안보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단기 수익이나 투자금 회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고려아연이 반세기 동안 쌓아온 제련 기술과 장기 투자 계획이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