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최근 제주하계포럼에서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막으면 안 된다”며 “더 늦기 전에 규제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등 신산업을 중심으로 산업 지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우리 제도는 여전히 과거 산업 시대의 규제 틀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류 회장은 산업경쟁력을 갉아 먹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많다고 했다. 구글, 애플, 메타,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안 되는 것 빼고는 다 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며 미국식 네거티브 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법률이나 규정으로 금지한 것이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는 방식이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키웠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식 규제를 전면 도입하기 어렵다면 신기술·신산업·특정 지역부터라도 규제를 재설계할수 있는 ‘규제 프리존’을 도입하자고 했는데 새겨들을 만하다.

사실 규제 프리존 아이디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규제 프리존을 두세 개 광역 시·도 단위로 확장하는 ‘메가샌드박스’를 제안한 바 있다. 기존 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해 새로운 기술과 사업 모델을 시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AI,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등 기존 법 체계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신산업 분야는 마음껏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혁신 공간이 될 수 있다. 지역 활성화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기업투자로 일자리는 물론 협력업체 연구기관, 서비스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많은 곳에서 혁신이 나오기는 힘들다. 수많은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관련 부처도 달라 기업이 규제 대응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허용 여부를 살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고, 기존 법 체계에 맞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모래 주머니를 몇개씩 차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게 우리 기업들의 현실이다.

정부도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지만 가시적인 게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새로운 규제입법만 계속 늘었다. 이런 식으로는 국가 대항전이 된 기술 속도전에서 뒤처지기 십상이다. 미국은 기업을 옭아매는 규제도 적지만 국가가 앞장서서 기업을 방어하고 장애물들을 치워주고 있다. 중국은 기술굴기를 내세워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기업을 끌고 밀고 있다. 기업만 잘해서도 안되고 국가와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이다. ‘규제 프리존’ 등 현실적 규제 혁신은 물론이고 산업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 체계 전체를 과감히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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