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정신의 헌법전문 명기를 위시한 개헌안이 7일 국회에 상정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이다. 40년 가까이 한 번도 손대지 않은 헌법 아래서 살아 온 국민이라는 오명을 현 22대 국회가 씻을 수 있을지 자못 관심 집중이다. 개헌안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면 2000억원 이상의 국민 혈세가 절감되고 투표율도 올라갈 것이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내용에는 이견을 표하지 않으면서도 반대 당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지방선거 영향 때문이다.
개헌안은 헌법전문에 민주 헌정 수호의 역사를 명기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 비상계엄 선포의 사전 국회 동의제, 감사원 독립과 예산심의 절차 개선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국회가 마련한 현재의 헌법전문 개정안은 국민주권과 민주 헌정 수호의 역사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3·1운동과 4·19 민주 이념에 이어 추가하는 대목으로 “부마 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안이 그것이다. 5·18은 공간적으로 광주 일원에서 시간적으로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내란군의 잔혹한 폭행, 발포, 살상에 대항해 시민, 청년, 학생, 기층 민중이 불굴 투쟁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5·18 광주는 전형적인 항쟁의 역사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첫째, 항쟁지도부, 시민군, 시민수습대책위원회 등의 조직적인 항거였고 둘째, 내란집단의 흉계인 비상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 등 목표가 명확했으며 셋째, 물리적으로 격렬한 저항 행동의 분출 넷째, 수백명의 인명 희생이 수반됐다. 5·18 광주의 관련자들뿐 아니라 학자나 역사학자들과 언론이 민중항쟁이나 민주항쟁이란 명칭을 흔히 써온 이유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은 1995년 12월 처음 입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 작명됐다. 30여년간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로 터무니없는 북한군 침투설 등 5·18에 대한 온갖 폄훼가 횡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상황에서 김영삼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실증주의 역사관이다. 지금은 민주화가 충분히 이루어졌고 올해 초 전두환 회고록이나 지만원 씨 등의 5·18 폄훼가 허위 주장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내려졌다. 5·18의 미흡한 명칭을 제대로 고쳐 역사적 사실과 의미에 일치시키는 정명(正名)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명칭과 실제가 다르면 사회질서가 바로 서지 않는다는 것이 ‘논어’에 나오는 정명 사상이다. 공자의 사상을 한층 더 심화시킨 맹자는 군주답지 않은 군주를 축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했다. 정명 사상에 근거한 역성(易姓) 혁명론으로 고려나 조선의 왕조 창건과 임금답지 않은 폭군을 끌어내린 조선조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 정당성의 근거이기도 했다. 서구 시민혁명의 사상적 근거로 존 로크가 주창한 권력 신탁의 철회와 국민저항권과도 같은 내용이다. 현대 민주 헌정에서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또한 정명 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5·18 광주의 역사적 사실과 의미에 부합하지 않고 ‘답지 않은’ 명칭을 올바로 정명하여 헌법전문에 명기하는 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헤아려야 한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ESG실천국민연대 상임의장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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