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이 조금 지났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국의 공습에서 출발한 전쟁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초반 공포가 일상을 지배했다.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었지만, 석유 없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를 찍던 주가가 불과 며칠 만에 20% 가까이 상승 폭을 반납했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주가가 10%가 넘게 폭락하던 그날은 살벌함 그 자체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주유소의 기름값은 단숨에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섰고, 나프타 부족 우려에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된서리를 맞았다.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두 달이 지나 휴전에 돌입해 있는 지금은 어떨까. 긴장감이 사뭇 다르다. 여전히 고유가가 지속되고 있지만,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운다. 종량제 봉투는 여전히 수급난이 있지만, 구매를 못 할 정도는 아니다. 기름값은 최고 가격제 시행으로 고유가가 체감되지 않는다. 다수 대중의 인식에서는 전쟁 위기감이 한결 무뎌졌다고 보는 게 정확한 지점이다.
중동 석유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이번 전쟁은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럼에도 긴장감이 이처럼 눈에 띌 정도로 완화된 데는 정부의 신속한 정책 대응이 큰 역할을 한 게 분명하다. 발 빠르게 원유 수급에 나서 불안감을 잠재웠고, 유가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실물 체감도가 큰 유가 급등의 고통이 사전에 차단됐다. 더불어 대대적인 추경으로 경기 하강의 버팀목을 세웠다. 발 빠른, 그리고 적극적인 정책 집행 덕에 심리적으로 이 전쟁은 이제 저 멀리 타국의 ‘남의 일’이 됐다.
하지만 전쟁의 공포가 안도로 바뀐 이 시점에 또 다른 불안감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다름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려는 우리들의 간절한 의지가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석유 없는 세상’의 공포는 사실 현재 진행형이다. 여러 비상조치가 시행 중이기도 하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공공부문은 2부제, 공영주차장은 5부제가 이뤄지고 있고,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정책 자금까지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상조치에도 일상생활에서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절박함을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석유 최고 가격제 또한 유가 급등의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역으로 고유가를 체감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가격 부담이 덜하니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해 굳이 차를 세워둬야 할 유인이 줄었다. 추경을 통해 지급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도 ‘선한 취지’에도 우려되는 대목이 남는 게 사실이다. 실제 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첫날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돈’이 지급되니 기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기색들이 있었다. 젊은 세대들에 빚을 지우는 것 아니냐는 미안함과 풀려나간 돈들이 결국 물가 상승의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쉽사리 부정하기 힘든 지적들이다.
보통 정책의 성패는 타이밍에서 갈린다고 말한다. 신속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이뤄진 이번 위기 극복 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이 성공의 뒤에 ‘고통 분담’ 의지의 상실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전쟁의 후폭풍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서서히 우리 일상의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정순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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