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금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며 “(정부 출범) 8개월이 다 돼 가는데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 방침에 대한 입법조차도 20%밖에 안됐다”고 했다. 임광현 국세청장에게 체납된 국세 외 수입의 징수를 위한 방안을 재촉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공교롭게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입법부가 한미 간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한국산 자동차와 주요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협박발언을 내놓았다. 이유야 다르지만 국회가 같은날 한국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은 셈이다. 누구보다 여당이 가장 뼈아프게 들어야 할 말이다.
이 대통령의 말은 날이 서 있었다. 임 청장이 부처 합동 체납세 징수를 위해선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 운영보다) 국가채권관리법 개정이 빠를 것 같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아이 참, 말을 무슨…”이라며 “지금부터 시작하라. 2월에 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지금 국회에 계류된 법률이 수백 개인데, 저런 속도로 해서 어느 세월에 될지 모른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여야 대치로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 국회 상황에 대한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당은 사법·언론·검찰 등 개혁법안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논란만 키우고, 당장 급한 민생·경제 정책 입법은 진척을 못 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위협 빌미가 된 국회의 법안 처리 문제도 여당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이날에서야 정부와 협의를 갖고 부랴부랴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을 2월에 심의·상정해 3월 내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법안은 지난해 11월 26일 여당에 의해 발의됐지만 숙려기간(20일)이 지난 뒤에도 소관 상임위(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한미 간 관세 및 대미 투자 합의가 이뤄지자 마자 여당은 ‘특별법’처리를, 국민의힘은 국가 간 조약에 따른 ‘국회 비준’을 주장하며 맞섰는데, 이날도 충돌은 재탕됐다.
대미투자의 법제화 시점이나 이행 절차마저도 한미 간 입장·전략 차가 있다는 사실을 십분 감안한다고 해도 여당이 그동안 야당을 설득하지도, 심의·의결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던 것은 무능이거나 직무유기다. 당·정·청협의회가 있는데도 “입법이 느려 일할 수가 없다”는 대통령의 공개적인 개탄이 나오게 된 것은 정부·청와대 잘못도 있지만 여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민주당은 지금 가장 급한 일이 무엇인가부터 잘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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