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안정 위해서는 초단기 국채만 적격

발행량 제한…주요국 통화 대체도 한계

장기국채·회사채 확대되면 ‘unstable’

금융 토큰화와 결합하면 위기 씨앗될 수

입법 앞두고 정부·여당과 한은 이견 커

제대로 알고, 효용과 부작용 모두 살펴야

‘춘추(春秋)’는 공자(孔子)의 역작이다. 간결하고 건조한 춘추필법(春秋筆法) 때문에 혹자는 공자의 주관이 배제된 객관적 기록으로 오해한다. 춘추에는 공자의 ‘대의명분’ 사상과 역사에 대한 엄정함이 녹아있다. ‘시해(弑)’와 ‘살해(殺)’를 구분했고, ‘침범(侵)’과 ‘정벌(伐)’을 구분했다. 세상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공자는 “후세가 나를 알아주는 것도, 나를 비난하는 것도 모두 ‘춘추’ 때문일 것”이라며 역사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이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했다. 공자가 위대한 이유는 춘추필법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한 데 있지 않을까?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다룰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과정에서도 필요한 교훈이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태스크포스(TF)가 2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금융위원회, 자문위원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 기본법) 정부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속도감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은행이 쟁점 별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은은 금융 안정 등을 이유로 은행 지분이 51%를 넘는 컨소시엄만 발행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은행 지분 51% 룰’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는 빅테크 진입을 통한 혁신을 위해 사업 구조에 따라 지분 비율이 유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첫 번째 착각: 발행 한도는 없다?

비트코인은 2,100만 개라는 ‘코드상의 한계’가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이론상 달러만 들어오면 계속 찍어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담보물의 한계 때문이다.

테더(USDT)나 서클(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 그 중에서도 현금화가 쉬운 초단기 국채(T-Bills)를 사야 한다.

국채 역시 시장에서 가격이 변동된다. . 채권가격은 금리와 반대다. 만기가 긴 장기 국채는 가격 변동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안정적(stable)이라고 하기 어렵다. 지난 2022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금리 상승으로 장기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건전성에 문제가 생겼고,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bank-run)으로 이어졌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과정에서 유입된 현금은 초단기 국채에 투자되는 게 가장 ‘안정적’이지만 현재 미국 내 통화량(M2) 대비 단기 국채 비율은 약 31% 수준이다. 스테이블 코인이 덩치를 키워 단기 국채를 모두 사들이는 순간 채권 시장의 유동성이 고갈될 수 있다. 더 이상 살 국채가 없는 시점, 즉 미국 재무부의 단기국채 발행 능력이 곧 스테이블코인의 물리적 발행 한도가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초자산의 안정성이 생명이다. 가격 변동이 거의 없이 유동화할 수 있는 초단기 국채만이 적격 자산이다. 하지만 초단기 국채는 발행과 유통량에 한계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초자산의 안정성이 생명이다. 가격 변동이 거의 없이 유동화할 수 있는 초단기 국채만이 적격 자산이다. 하지만 초단기 국채는 발행과 유통량에 한계가 있다.

두 번째 착각: 달러가 모든 통화를 대체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모든 통화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발행 한도’를 고려하면 이는 과장된 우려다. 미국의 단기 국채 규모는 전 세계의 통화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M2는 약 21조5000억 달러(약 3경 원)다. 이 중 단기 국채는 31.2%인 약 6조7000억 달러(9400조원)다. 주요국 M2를 보면 유로존이 약 16조 유로(2경4000조원), 중국이 337조 위안(6경원), 한국이 약 4000조원이다. 경제규모, 즉 통화량이 작은 일부 국가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통용될 수 있지만, 주요국에서는 기존 통화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이서 달러 유동성 공급, 즉 단기국채 비율이 높다. 스테이블코인은 자국 통화의 국제화 도구다. 상대적으로 국제시장에서 사용 비중이 낮고, 이 때문에 미국 보다 채권시장이 덜 발달한 유로존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오히려 앞으로 단기국채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늘릴 여지가 더 크다.

비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기회다. 유로존, 중국, 한국처럼 미국보다 채권 시장이 덜 발달한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국제화 도구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여지는 더 크다. 특히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와 결합한다면, 스테이블코인 시대에도 외환 시장은 여전히 존재하며 다양한 통화가 공존하는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다.

세 번째 착각: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적이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화폐는 기초자산(금 또는 은)을 기반으로 발행됐다. 1971년 미국이 달러의 금태환을 중단하면서 이른바 신용을 기반으로 한 화폐 시대가 열린다. 기초자산 가격 뿐 아니라 발행자의 신용에 따라 서도 화폐가치 변동폭이 더 커졌다.

단기 국채를 기반으로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다행이지만, 오래지 않아 자금시장의 단기 유동성 고갈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금융의 토큰화가 이뤄지면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상품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토큰화된 증권이나 예금 등이다. 수요가 커지면 단기 국채를 대신해 민간 기업의 회사채나 장기 국채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을 만하다. 이른바 언스테이블(unstable)한 코인의 등장이다. 안정을 담보하기 위해 불안정한 자산을 끌어들이는 역설이다.

민간 회사채는 국채 대비 원리금 상환 불가(default) 위험이 크다. 장기 국채는 대규모 환매 요구에 직면할 경우 만기 불일치(Maturity Mismatch) 위험이 존재한다. 토큰의 금융상품화는 토큰을 기반으로 한 신용창출(leverage)를 수반하게 된다. 토큰이 금융상품화되고 이중 레버리지가 결합하는 순간, 금융 효율은 높아지겠지만 그 이면의 위기 가능성도 빛의 속도로 증폭된다. 언스테이블코인이 유발할 금융불안, 경우에 따라서는 금융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페이스북은 블로체인 기반 암호화폐인 리브라(Libra)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전통 금융 시스템의 높은 비용과 규제 장벽을 깨겠다는 명분이었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주요국 정부의 중앙은행, 특히 미국의 반발로 좌절됐다.
2019년 페이스북은 블로체인 기반 암호화폐인 리브라(Libra)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전통 금융 시스템의 높은 비용과 규제 장벽을 깨겠다는 명분이었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주요국 정부의 중앙은행, 특히 미국의 반발로 좌절됐다.

2019년 페이스북은 블로체인 기반 암호화폐인 리브라(Libra)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전통 금융 시스템의 높은 비용과 규제 장벽을 깨겠다는 명분이었다. 페이스북은 안정적이고, 가치변동이 최소화되며, 유동화가 용이한 자산에 분산투자를 함으로써 리브라의 가치를 안정시키겠다고 설명한다. 달러 등 선진국 단기국채나 ETF 등이 유력투자처로 예상됐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주요국 정부의 중앙은행, 특히 미국의 반발로 좌절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금융위기 이후 강화됐던 규제들이 완화되고 있다. 정부의 감시망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그림자 금융, 정확히는 사적 대출 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도 양성화로 방향을 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규제가 완화되며 정부 감시망에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파생상품들이 범람했다. 규제의 핵심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는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국채, 즉 재정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방위비 부담 확대로 상당기간 재정이 어려운 이어질 전망이다. 편의와 효율을 위한 스테이블코인이 재정위기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