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2호기의 계속운전 결론이 또 미뤄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3일 회의를 열어 고리2호기 재가동 안건을 논의했지만, 일부 위원의 추가 자료 요구로 결정을 내지 못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보류다. 이 원전은 설계수명 만료로 이미 2년 반째 멈춰 있는 상태다. 국가적 손실은 물론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문제는 단순히 고리 2호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대형 원전만 10기에 이른다. 오는 12월 가동 연한이 끝나는 한빛1호기를 비롯해 한빛 2호기, 고리 3·4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3·4호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들이 차례로 가동을 멈추면 국내 원전 전체 설비의 30%가 중단된다. 연간 59.7테라와트시(TWh)에 달하는 전력이 사라지는데, 이는 지난해 서울시 전체 전력 사용량(50.4TWh)을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과 가정의 전력 공급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원전은 재가동 준비에도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번에 허가가 났어도 내년 상반기나 돼야 다시 돌릴 수 있다. 승인 결정을 계속 미룰수록 실제 가동기간은 줄어 전력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리 2호기 중단만으로도 액화천연가스(LNG) 대체 비용으로 환산하면 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는다. 주요국은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을 계속 사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에선 상업용 원전 92기 중 84기(약 91%)가 기존 40년 수명에 20년씩 추가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도 새로 건설할 계획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급격히 늘어나는 전력 수요와 탄소 배출 감소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조치다.
국가 전력망은 단기간에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린다 해도 간헐성과 송전망 한계로 원전을 바로 대체하기 어렵다. 대형원전 10기분의 발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채우려면 계획 대비 2배 이상의 추가 설비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에너지 믹스’는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균형 있게 활용해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지금 세계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원전 건설과 운영 기술에서 경쟁력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다. 수출에 나서려면 국내에서 원전을 홀대하는 인상이 짙어선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고리2호기를 포함한 원전의 계속운전 허가를 신속히 결정하고, 예측 가능한 원전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 안보가 정치논리에 따라 좌우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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