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열다섯, 중학교 2학년에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 드라마 ‘공룡선생’(1994)으로 시청자와 만난 이후 22년을 연기자로 살았다. 이번엔 힘든 도전을 마쳤다.

8개월, 51부작, 첫 주말드라마(MBC ‘가화만사성’)의 여주인공.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어요. 주말드라마 하면 이틀은 쉰다던데, 너무 밤을 새는 거예요. 누가 거짓말 했어? (웃음) 감정연기도, 관계 설정도 많아 엄청 바빴어요. 엄마 만났다가, 남편 만났다가, 병문안 갔다가…(웃음)”

긴 시간을 보낸 김소연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8개월간 그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였고, 외도한 남편으로 인해 상처입은 아내였다. 다시 만난 새로운 사랑은 죽은 아들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였다. 극적인 설정은 여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1회부터 했어요.” 51부 내내 봉해령의 삶은 평안한 적이 없었다. “만약 제게 눈물이 남아있다면 그 눈물을 오늘 흘릴 수 있게 해달라고 매번 기도했어요.” 워낙에 감정을 쏟는 장면들이 많았다. “어떻게 이런 대본을 또 주실까” 싶을 만큼 원망도 적지 않았다. “내가 이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 8개월 내내 “살얼음을 걱는 기분”이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긴장된 시간 속에서 보낸 김소연에게 지난 8개월의 성취감은 22년의 연기생활에서도 다시 없는 경험이었다.

“한 씬 한 씬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행복했어요. 너무 오글거리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이래서 연기하는구나’,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잠이 안 오는 순간들을 경험했어요. 감정이라는 것을 표출할 수 있는 연기가 많지 않아 갈증이 있었어요. 조금 더 폭발했으면 좋겠는데, 이 드라마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 하게 원없이 했던 것 같아요.”

시트콤, 로맨틱코미디,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지만 배우 김소연의 이름 앞엔 ‘여전사’라는 수사가 유달리 부각됐다. 큰 눈 뒤로 사연을 숨긴, 액션과 감정의 연기가 두루 가능한 흔치 않은 여배우였다. 첩보 액션물 ‘아이리스’(KBS2)로 만난 북한 공작원, ‘투윅스’(MBC)의 여형사는 김소연이기에 가능한 독보적인 영역이었다.

“음, 근데 ‘진짜 사나이’ 이후론 안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아! 중국에서 그런 역할이 들어왔어요. 액션 연기를 하는… ‘진짜 사나이’를 못 보셨나봐요.”

여전사 김소연의 환상은 MBC 군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통해 산산조각났다. 알고보니 운동은 멀리 하는 ‘저질 체력’. 악으로 해왔던 연기가 ‘미친 존재감’ 수사까지 안겨준 경우였다. 하나의 영역을 가지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배우로서의 욕심엔 아쉬움도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배역을 하지 못 하는 부분에서요. 그럴 만한 배역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제가 바라던 캐릭터는 이미 캐스팅이 끝나 다른 사람의 몫이었고요. 갈증이 쌓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늘 작품이 끝나면 숨도 안 쉬고 빨리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전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작품으로요. 그런 마음이 충족이 되지 않더라고요. 이번엔 제가, 다음 작품은 뭐가 있냐는 이야기를 안한대요. 한 달쯤은 쉬고 싶어요.”

엄마, 아내, 여자로서의 삶을 보여주여 하는 감정의 진폭이 큰 역할, 중장년층의 주부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주말드라마를 선택하는 것이 김소연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엄마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보다는 ‘이거 하면 청춘물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도 했어요.”

대중의 반응도 비슷했다. “김소연이 왜?”라는 이질감이 따라왔다. 트렌디한 청춘물은 아니더라도 여배우로서 자신의 영역이 분명했고, ‘검사 프린세스’를 통해 로코퀸으로의 가능성도 보여줬던 기억 때문이다.

“그런 말씀 들으면 정말 감사했죠. 그런데 이제와 돌아보면 내 입으로 그런 사치스런 말을 어떻게 했나 싶어요. 엄마라는 이름 하에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넒어졌어요. 이 드라마를 무사히 끝내면 제게 제2의 연기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주말극 한 편의 체감온도는 상당했다. 길을 나설 때마다 “이혼 언제 하냐”, “누굴 선택하냐”는 어머님들의 질문도 숱하게 받았다. ‘진짜 사나이’,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사랑스럽고 밝은 모습은 김소연의 친근감도 높였다. “이미지가 많이 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자로 살며 중간 지점에 와서 다시 생각해주시는 포인트가 생겼다는게 감사하죠.”

22년을 몸 담은 연기자로의 삶을 스스로 ‘중간 지점’이라고 이야기한다. 10년간 한 우물을 파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데, 김소연에게 ‘연기’는 아직도 멀기만 한 길이다.

“다른 배우들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까 싶을 때가 많아요. 전 연기가 너무 너무 어려워요. 아직도 어렵고, 배우고 싶고, 두렵고요. 가끔 선배님들께서 나도 연기가 어렵다고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위안이 되고요. 그런데 이 고통스러운 힘듦이 너무 좋아요.”

김소연의 큰 눈에 다시 깊은 감정들이 내려앉았다. 오래도록 꾸준히, 자신의 벽을 두드리며 넘어온 지난 시간들이 그 눈빛을 채웠다.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위로받는, 삶의 모든 감정을 사랑에 빼앗긴 여주인공의 눈으로 말했다. “전 연기가 너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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