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이 공연연출인지라, 필자는 어쩌다 한 번씩 크고 작은 국가 관련 행사의 연출을 맡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공연장에만 있던 나를 여기에 불렀으니, 나만이 잘할 수 있는 거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행사의 전체 순서를 하나씩 살펴본다. 귀빈입장, 개회사, 축사 등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공식행사도 하나의 공연으로 엮일 수 있게끔 머리를 굴리고 공을 들인다.
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았을 때 ‘선수단입장’ 시 점잖은 클래식 음악이 나오던 기존 관례를 깨고 DJ 부스에서 EDM 음악을 튼 적이 있다. 반응이 괜찮았던지 이후 많은 국내 개회식에서 선수단 입장에 EDM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편곡된 애국가 제창. 당시 4박의 애국가를 3박으로 편곡해 더 힘차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애국가는 손댈 수 없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라 염려한 관계자들 때문에 불발됐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애국가를 갖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영국 민요에 가사만 붙여 부르기도 했고, 일제 탄압, 6·25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등불이 됐던 노래인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국가행사에서 애국가만큼은 우리가 학교부터 익히 들어온 그 버전으로만 주로 부르게 돼 있다. 물론 가수의 창법과 장르는 다를 수 있겠으나, 악보에 적힌 그 박자, 그 템포, 그 구성에 머물러 있다. 규정이 그러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담당자의 확인을 거쳐야 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생 음악을 했고 무대 위 창작작품을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이 바로 이 점이다.
필자는 평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기에 두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며 살았고, 이런 화두가 생길 때마다 나머지 한 나라를 살펴보고는 한다. 나머지 한 나라인 미국도 한때는 영국의 노래를 빌려다 시를 붙여 국가로 만들어 부르다, 19세기 초 미국과 영국의 격렬한 전투 중 지금의 국가가 만들어졌다. 19세기 내내 불렸지만 1931년에서야 공식 국가가 된,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국가다. 90년이 지난 지금, 음원사이트에서 미국 국가를 검색해보면 수백 개의 버전이 검색된다. 컨트리 음악부터 로큰롤·R&B·성악·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창법, 그무엇보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한 편곡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러 국가 행사, 다양한 스포츠게임에서도 불려 왔다.
우리가 간직해온 애국가를 무분별하게 변형시키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원형은 보존하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창의성을 부릴 수 있도록 한 번씩은 국가행사에서 이 굳게 닫힌 문을 열어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애국가를 음악으로 접근하고, 음악의 기법을 사용해 또 다른 감동의 애국가를 만들어 부른다면 그것 역시 자랑스러운 우리의 애국가가 아닐까. 나라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각기 다른 모습을 담아낸 그런 다양한 색채의 애국가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애국가를 3박으로 바꿔서 불러보는 중이다. 또 다른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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