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부산콘서트홀서 기자간담회
라 스칼라 음악감독 선임 소감 밝혀
“실력 좋아도 안 통하면 동행 힘들어”
클래식부산, 라 스칼라와 협업 기대
![지휘자 정명훈이 지난 1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부산콘서트홀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26/news-p.v1.20250519.9c8d5b19b55c4bf989faf29b81e1b8e5_P1.jpg)
“36년간 사랑스럽게 지낸 제일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이젠 결혼해 가족이 됐어요(웃음).”
‘오페라 종가’ 라 스칼라 247년 역사상 첫 아시아인 음악감독이 된 정명훈은 지난 19일 개관을 앞둔 부산콘서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여덟 살에 건너가 외국에서 일평생 생활해 왔기에 ‘아시아인 최초’라는 말이 내게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외국인은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사람보다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으로 열심히 해왔다. 나라를 빛낼 기회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2015년 라디오 프랑스필 오케스트라를 떠날 때부터 공식 석상에서 60대 이후엔 오케스트라나 극장 등을 책임지는 자리(음악감독)는 맡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떤 유명 오케스트라에 초대받아도 책임을 맡기엔 ‘너무 늦었다’며 거절했는데, 라 스칼라만큼은 ‘노(No)’라고 할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정명훈이 라 스칼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좋은 동료들’ 때문이다.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라 스칼라 극장 대표는 정명훈과 오랜 인연을 맺으며 “가장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캐스팅부터 리허설까지 모든 책임을 맡아줘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단원들도 특별하다.
보통의 오케스트라에사는 예술가이기 전에 직장인인 단원들은 출퇴근 시간은 물론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외국 오케스트라는 ‘시간이 돈’이라는 입장이 분명하다고 정 감독은 설명한다. 라 스칼라 단원들은 그러나 하루에 두 번 하는 리허설을 세 번까지 이어가며 음악에 열정을 보인다.
정 감독은 “이젠 아무리 잘하는 악단이라 해도 서로 통하는 것이 없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 함께 하기가 싫어진다”며 “라 스칼라는 지금까지 나의 제일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이젠 가족으로의 책임도 안게 됐다”고 말했다. 그간 정명훈이 맺어온 라 스칼라와 관계 역시 각별하다. 정명훈은 1989년부터 이곳에서 총 9편의 오페라를 84회 공연했고, 총 140회가 넘는 콘서트를 지휘했다. 비(非) 음악감독으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라 스칼라는 정명훈을 “베르디의 대표적인 해석가”라고 했다. 내년 12월 예정된 취임 연주회에서도 그는 베르디의 ‘오텔로’를 올릴 예정이다. 베르디가 1887년 작곡해 라 스칼라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음악 인생 내내 전성기를 살아온 그는 고희를 넘어 다시 한번 큰 책임을 안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정명훈은 “파리 오페라 시절엔 젊은 에너지 덕분에 하루 24시간씩 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파리 오페라 시절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럴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라 스칼라 음악가들을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라 스칼라 음악감독 취임에 앞서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클래식부산의 예술감독직을 먼저 시작한다. 오는 9월에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이 부산과 서울에서 공연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2027년 개관을 앞둔 만큼 두 극장 간 협업도 기대된다.
정명훈은 “(두 극장의 협업이) 많이 도움은 될 것”이라며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처음 시작하는 곳인데, (라 스칼라는) 제일 높은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어서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 스칼라와 함께 할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역시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 연주할 가능성이 높다.
정 감독은 “부산에서 내 역할은 라 스칼라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청중을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씨를 심어야 한다”며 “오케스트라에서 일은 음악가가 하지만, 성패는 지휘자가 좌우한다. 일평생 통해 배워온 것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이탈리아 오페라에 관해선 아시아에서 부산이 대표적인 오페라하우스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 제게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정의해도 된다고 한다면, ‘한국은 노래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함께 노래를 하면 싸우기가 힘들잖아요. 전 우리나라가 어떤 면에선 덜 날카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노래를 더 많이 하는 데에 라 스칼라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부산=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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