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오는 5월 7일 최종 계약만 남겨둔 이 사업은 26조원 규모로, 한국 해외 원전 수출로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이다. 이번 수주는 한국의 기술력, 가격 경쟁력, 시공 능력이 종합적으로 인정받은 쾌거다. 특히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 분쟁과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이의 제기 등 경쟁사들의 압박을 넘어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두코바니 원전은 2029년 착공에 들어가 2036년부터 차례로 가동될 예정이다. 체코는 지난해 기준 40.7%였던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50년까지 5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외에 테멜린 원전 증설도 추진하고 있어 두코바니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이 우선협상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무너져 가던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가 다시 세계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은 ‘팀 코리아’ 모델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번 원전 수주는 글로벌 에너지 지형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으로 원전이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스페인의 대규모 블랙아웃이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에 기인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 마당이다. 여기에 전기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 산업의 급속한 성장은 전력 수요를 폭증시키고 있다.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의 필요성이 더 커지는 이유다.

전 세계 원전 발전 용량은 2050년까지 현재의 2.5배인 950GW(기가와트)로 증가하고, 원전 시장 규모는 2035년까지 6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원전 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인 300GW로 늘리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일본 영국 프랑스는 탈원전 기조를 접고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으며, 폴란드 루마니아 사우디 등도 한국 원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로선 둘도 없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수주 경쟁은 기술력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정권의 의지, 외교적 설득력, 민관 협업의 속도와 집중력이 한 데 합쳐져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존의 ‘탈원전’ 정책에서 현상유지로 선회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과 한 단계 높은 원전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처럼 찾아온 ‘원전 르네상스’ 흐름을 잘 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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