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게티이미지뱅크]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만 19살에 첫 외식을 한 가난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도 안 가고 바로 직업학교에 갔다. 그리고 트랙터 공장에 취업했다. 그의 월급은 93위안(약 1만8000원). 공장 급식이 지겨웠던 남자는 돈을 모아 허름한 훠궈집(중국식 샤브샤브)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최악의 경험이 됐다. 음식점의 훠궈 맛은 형편없는데 직원까지 불친절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할 때 “음식점에서 고객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중국의 서민 음식’ 훠궈 음식점으로 싱가포르 최고 부자가 된 남자, 장융(張勇·55)의 이야기다.

‘마라향’을 앞세운 국물요리, 셀프 소스바 등 음식 변주에서 ‘국수 춤’, 네일아트까지 고객을 위한 이색 서비스로 단숨에 ‘화궈신화’를 쓴 장융의 하이디라오는 한국 외식시장에서도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Z세대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SNS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하이디라오의 한국 매출은 2020년 139억원에서 지난해 781억원으로 5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내 9개 매장만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장융은 2018년 포브스가 선정한 싱가포르 부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장융의 자산은 139억달러(약 19조7000억원). 10년동안 싱가포르 갑부 1위를 차지한 부동산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훠궈 음식점 CEO가 추월한 순간이었다.

여친과 살 집 없어서 사업 시작한 공장직원

2018년 투자자 행사에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오른쪽)과 그의 배우자 슈핑이 참석했다. [로이터]
2018년 투자자 행사에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오른쪽)과 그의 배우자 슈핑이 참석했다. [로이터]

“나는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대학도 못 갔다.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또 다른 친구 커플과 함께 훠궈 식당을 차렸다. 돈이 없어 투자도 못했다. 실질적인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1만 위안(약 140만 원)밖에 안 됐다. 난 빈털터리였다. 창업 자금에 넣은 돈도 적었다. 그래도 총 지배인을 맡았다. 창업금을 댄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5년 안에 15만 위안(약 21 50만 원)까지 벌겠다. 실패하면 내가 보상하겠다’. 당시 15만 위안은 20대에 큰 돈이라 모두 놀랐다.”


1970년생인 장융 창업자는 중국 쓰촨성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융’은 용기를 뜻한다. 장이 살던 지역은 정말 가난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인터뷰에서 “나도 시골 출신이지만 시골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거짓말쟁이라고 믿는다”며 자신의 고향을 회상했다.

직업학교 졸업 후 6년동안 공장에서 일하던 장은 결혼을 앞두고 공장을 관두게 된다. 여자친구와 살 집이 필요했는데, 일하던 공장에서 사내 아파트 배정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던 장은 1994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이 살던 지역 쓰촨성에 훠궈 음식점을 차리게 된다.

훠궈 음식점 이름은 하이디라오(Haidilao), ‘바다밑에서 보물을 건지다’는 말이다. “바다의 바닥에서 달을 건지다”를 의미를 담은 마작의 용어인 해저로월(海底捞月)에서 따온 말로 맨 마지막 패를 뽑아서 이기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장이 훠궈음식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손님한테 공짜 간식 뿌렸더니…무일푼 창업 ‘대박’

하이디라오 매장 서비스를 다룬 틱톡 영상들 [틱톡, 월스트리트저널(WSJ) 공식 유튜브]
하이디라오 매장 서비스를 다룬 틱톡 영상들 [틱톡, 월스트리트저널(WSJ) 공식 유튜브]

“처음에는 테이블이 네 개뿐이었다. 비록 작은 식당이었지만, 주변 훠궈 식당을 몇 달 만에 제치는데 성공했다. 나중에는 해당 건물 전체 층을 쓰고 확장 공사를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미쳤다고 말했다. 버는 족족 식당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는 최고의 장식을 가지고 있었고 에어컨도 갖추고 있었다.”

내 식당을 한번 방문했던 모든 손님들이 재방문하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장은 음식 대신 서비스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무료 간식을 줬다가 나중에는 보드게임, 할인 이벤트를 열었다. 식탁 4개뿐인 조그마한 훠궈집은 입소문을 타게됐다.

장은 첫 매장을 연지 4년 만에 1998년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3번째 매장을 열었다가 크게 사업을 실패해 당시 돈으로 30만 위안(약 5800만원)을 잃게 된다. 친한 친구를 믿고 매장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장은 한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안(중국 산시성 성도)에서 의료기기 회사를 운영하던 친구가 ‘시안에 훠궈 음식점 열자’라고 제안했다”며 “돈도 없었고, 시안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친구는 ‘시안 훠궈 맛은 별로니까 너라면 잘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반 년만에 망했다. 시안이라는 도시 특성과 하이디라오 가게 특성이 맞지 않다. 홍보를 잘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장이 직접 매장 관리를 못했던 것이 사업 실패 원인이었다. 장은 “당시엔 두 개 매장을 이미 운영하고 있었고, 가족도 시안에 없었다”며 “친구는 손실의 대부분을 떠안겠다고 했지만, 저는 끝까지 절반 이상을 제가 부담했다. 손실을 갚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장은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더 이상 누구와도 동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왕은 고객 보다 직원’ 추구했더니…직원 아이디어 폭발

하이디라오 훠궈 음식 사진. 하이디라오는 원하는 육수에 맞춰 훠궈를 먹을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레딧]
하이디라오 훠궈 음식 사진. 하이디라오는 원하는 육수에 맞춰 훠궈를 먹을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레딧]

하지만 하이디라오 매장이 늘어날수록 장이 모든 음식점을 관리할 수는 없었다. 장은 종업원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는 “손님을 왕처럼 여기라”보다 한발 더 나아가 “직원이 고객보다 더 중요하다”는 파격 슬로건을 내걸었다. 직원이 행복해야 손님이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 우선’ 철학 덕분에 하이디라오는 직원들의 ‘과한 친절’로 유명한 음식점이 됐다. 장은 매장 수익의 3%를 매니저에게 성과급으로 제공하는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직원 가족이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 돕기 위한 사내 자연재해기금을 만들었다.

그러자 직원들의 무한 친절이 시작됐다. 하이디라오의 대표적인 서비스는 ‘국수 춤’이다. 국수 요리를 주문하면 웨이터가 국수 반죽을 리듬 체조 선수처럼 돌리면서 손님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매장에서 네일아트 서비스를 하는 지점이 있는가 하면, 기다리는 손님의 신발까지 닦아주는 직원도 생겼다.

당시에는 온라인 시스템도 잘 갖춰지지 않아 모든 걸 종업원에게 의존해야 했다. 직원을 의심하면 사업은 망한다. 신뢰와 자율을 주면 직원도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어떤 종업원은 고객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권한을 준다는 건 이런 것까지 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 대기하는 동안 마술 쇼를 보여주거나 보드게임을 즐기게 도와주는 직원도 생겼다. 손님에게 장난감 선물을 쥐여주고, 심지어 화장실에 수도꼭지를 틀어주고 휴지를 건네줄 정도다​.

실제 하이디라오는 100% 내부 승진제를 운영해 매장 관리자와 간부를 모두 말단 직원 출신으로 채운다. 외부에서 간편히 경력직 간부를 영입하기보다, 신입 직원이 설거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누구나 노력하면 관리자까지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이 하이디라오 내부에 형성됐다. 한때 하이디라오는 종업원 기준 월 이직률이 10%로, 중국 내 최저 수준을 달성하기도 했다. 식당 관리자 이상은 퇴사율 0%에 가까워 중국을 놀라게 했다.

하이디라오 최고경영자(CEO) 양리쥐안. 1994년에 하이디라오가 처음 생겼을때 평사원으로 입사해 약 27년간 근속하며 하이디라오의 성장을 함께했다. 양리쥐안은 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AP]
하이디라오 최고경영자(CEO) 양리쥐안. 1994년에 하이디라오가 처음 생겼을때 평사원으로 입사해 약 27년간 근속하며 하이디라오의 성장을 함께했다. 양리쥐안은 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AP]

물론 이러한 운영 방식이 단점도 있었다. 직원들의 매장 운영방식을 두고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어 장은 기업 신규 주식 공모(IPO)를 주저하기도 했다. 초기 성장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의 경영 전략은 직원의 충성도 확보다”며 “모든 간부를 말단 직원에서 승진한 사람으로 구성한다. 다른 회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직원들이 (직원으로서의) 가치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거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재 하이디라오 CEO인 양리쥐안이다. 1994년에 하이디라오가 처음 생겼을때 평사원으로 입사해 약 27년간 근속하며 하이디라오의 성장을 함께했다. 양리쥐안은 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1994년 쓰촨성에 한 식당에서 홀서빙을 하고 있던 양리쥐안을 장이 눈여겨보다가 자신의 식당으로 스카웃을 했고, 16살에 하이디라오에 입사했다. 그는 2022년 44살의 젊은 나이에 하이디라오 CEO가 됐다.

외부에서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하버드대나 베이징대에서 학위를 땄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자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내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게 보인다.

장융 하이디라오 창업주

직원 우선으로 칭찬받지만…국적 포기·위생문제로 비판

장융 하이디라오 창업자. [하이디라오 제공]
장융 하이디라오 창업자. [하이디라오 제공]

“나는 돈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돈에 대한 태도는 결국 자신의 세계관이나 다름없다. 단순히 돈을 벌려고만 하면 위험을 두려워하게 된다. 혹은 갈등이 생기면 쉽게 원칙을 저버리게 된다.

하지만 더 큰 꿈이 있다면, 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된다. 그게 진짜 기업가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사업할 때 내 꿈은? ‘베이징에 가고 싶다’ 였다. 성공하고 싶었다.

나는 몸이 왜소한 소년이었다. 14살때 대부분 남자아이들이 변성기가 생겼을 때 변성기가 오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나를 놀렸고, 자신감도 사라졌다. 여자애들과 말도 못 걸었다. 춤도 못 추고, 유행가도 몰랐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그러다 도서관을 알게 됐다. 1980년대 이전엔 선전 책밖에 없었지만, 1983~84년 사이에 타고르 시집이나 역사책 같은 새로운 책들이 들어왔다. 그 책들을 읽으며 제가 무지하고 둔했다는 걸 깨달았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믿게 됐다. 그래서 성공하고 싶었다.”


장이 직원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가방끈이 짧은 그는 자신과 비슷한 직원들에게 마음이 갔다. 장은 “왜 제가 직원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라면서 “제 가치관과 제가 14살이나 15살 때 겪었던 일들 때문이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교육 수준이 낮은 시골 마을 출신 청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2018년 하이디라오는 홍콩 증권거래소에 76억 홍콩달러 규모의 IPO에 성공한다. 하이디라오의 성공으로 공동창업자인 장 회장과 부인 수핑, 스융훙 전무이사와 부인 리하이옌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억만장자가 됐지만 정융은 곧 국적 논란에 휩싸였다. 장은 일찌감치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고, 하이디라오 지주회사도 싱가포르에 설립해 사실상 중국을 떠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중국 국적을 버렸다”는 비난과 함께 하이디라오 불매 운동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은 하이디라오가 여전히 중국 음식점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위생문제도 여러번 논란됐다. 2017년 중국 내 매장에서 주방에 쥐가 들끓고, 식탁에 올리는 국자로 하수구를 청소하는 비위생적인 모습이 공개돼 하이디라오는 한 차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장융이 걸어온 길
장융이 걸어온 길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하이디라오는 직원 우선주의 원칙 하나로 전세계로 뻗어가는 중이다. 2020년대에 접어들어 중국 내 점포 수만 1000개가 훌쩍 넘은 대형 음식점이 됐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10여 개국 주요 도시에 하이디라오 간판이 세워지고 있다.

장은 하이디라오가 중국 문화를 반영하는 음식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장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맥도날드, 코카콜라, 스타벅스는 모두 미국 문화의 반영된 음식점이다”라며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전 세계가 중국에 더 주목하면서 중국 음식점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