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달러 달성 시점을 2027년에서 2029년으로 두 해 늦춰 잡았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2027년에 4만달러에 이를 것이라던 전망을 수정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더딘 성장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대만에 1인당 소득이 역전된다고 한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경고다.

IM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4642달러로, 지난해보다 4.1% 줄어든다. 3년 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후퇴다. IMF는 내년 3만5880달러, 2027년 3만7367달러로 완만히 증가해 2029년에야 4만341달러로 4만달러 선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성장률도 올해 1%에 그치고, 내년 이후에도 1~2%대 저성장이 고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만은 올해 2.9% 성장에 이어 2030년까지 2%대 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이에 대만은 내년 1인당 소득 3만6319달러로 우리를 추월하고, 2029년까지 줄곧 앞설 것으로 전망됐다.

경제 규모가 크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 1인당 GDP가 한 해 만에 4%나 감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장은 고금리와 고물가의 영향이 적지 않지만, 이는 국내 경제 성장 둔화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는 생산성 저하와 내수 시장의 위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 구조 전환에 대한 늦장 대응과 신산업 육성의 부족은 침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수출 주력품인 반도체와 자동차는 중국의 빠른 추격을 받고 있고 인공지능(AI), 로봇,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기술 분야는 중국이 이미 앞서고 있다. 첨단 산업에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일본처럼 저성장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1인당 GDP는 2022년에 한국에 따라잡혔고, 2030년까지 계속 뒤처질 것으로 전망됐다. 버블 붕괴 이후 산업 구조 개혁과 인구 감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인데, 지금 한국이 일본과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 징후가 현실화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 의존적 경기 부양에만 의존하고, 규제 혁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표를 의식한 단기적 미봉책만 쏟아내는 식이 이어지면 국민소득 4만 달러는 더 멀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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