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도쿄 라멘 미슐랭 거물, 미즈하라 셰프 인터뷰
‘라멘코이케’ 등 3개의 라멘집 미슐랭 선정
“미슐랭에 집착한 적 단 한번도 없어”
“실수 최소화 ‘무결점’, 맛의 ‘일관성’ 중점”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집착의 ‘미로(迷路)’, 미슐랭.
수 많은 셰프가 오늘도 미슐랭에 오르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 길에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미로에 갇힌 것만 같다.
그럴수록 미슐랭에 대한 셰프들의 집착은 커진다. 미슐랭 레스토랑을 탐문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제안하는 5가지 기준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 등에 맞춰 거액의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슐랭에 도착한 이는 극소수뿐이다. 애당초 주관적이로 추상적인 미슐랭의 기준이 뜬구름 잡는 말은 아닐까.
세계적인 미식의 격전지 도쿄에서 미슐랭 가게만 3개를 운영하는 미슐랭을 만드는 ‘신의 손’ 미즈하라 히로미츠(40·水原裕満) 셰프는 단 한번도 미슐랭에 집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많은 셰프들이 했던 말과 같다. 그에게 미슐랭은 자신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영광의 한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미슐랭에 도달하기 까지의 길이 미로처럼 느껴질리 없다. 미슐랭에 가는 길을 미로로 만드는 건, 셰프들의 집착이다.
미슐랭의 비결, ‘무결점’

미즈하라 셰프가 생각하는 미슐랭의 비결은 ‘무결점(無缺點)’이다. 무결점은 최고와는 다른 의미다. 실수를 없애고, 맛의 변동을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미즈하라 셰프의 ‘무결점’이다. 아무리 멋진 요리라도 날마다 맛의 변동이 있다면, 그에게는 의미가 없다.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도 한 점의 실수 없이 늘 한결같은 요리가 미즈하라 셰프에게는 가치있는 요리다.
“미슐랭을 목표로 요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슐랭이 제안하는 5가지 기준을 따라간 적도 없습니다. 다만, 기본에 충실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제 미식 철학을 미슐랭이 좋게 봐준 것 아닐까요. 실수 또는 변수를 최소화하고 한결같은 맛과 서비스 질을 유지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미슐랭의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맛과 서비스를 유지한다는 것, 듣기엔 쉬워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날씨나 농산물 재배 환경, 전염병이나 물가의 변동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요리의 맛은 천차만별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일부 식당은 물가 상승을 이유로 일부 재료를 빼거나 양을 줄여 고객에게 실망을 남겨주기도 한다. 값비싼 파인다이닝조차 변수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도 맛의 차이가 불가피하다.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하게 맛을 유지하는 건 미즈하라 셰프의 고집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물의 맛, 차슈의 두깨와 모양까지도 변수를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차슈의 모양이 살짝 달라지는 것만으로, 기름의 농도가 달라져 라멘맛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세한 차이지만, 미즈하라 셰프는 그 작은 차이조차 타협을 거부한다. 그것이야 말로 미즈하라 셰프의 미식이다.
“매번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셰프가 있지만, 저는 그런 부류는 아닙니다. 반대로 같은 것을 얼마나 실수 없이 만드느냐에 즐거움을 찾는 타입입니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 하지만, 매 순간 무결점을 완성하는 것 또한 굉장한 보람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그 일관성 있는 맛을 사랑해주는 손님들이 있어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에 투자하는 경영철학…“라멘의 지위 높이고파”

직접 만난 미즈하라 셰프는 185cm의 키에 연예인 못지 않은 굉장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도쿄에서는 그를 두고 ‘라멘계의 아이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 그는 20대 초까지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 경제적 이유로 밴드를 그만 두고 이자카야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요식업에 발을 들였다. 미즈하라 셰프는 스스로를 요리에는 큰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라멘을 선택한 것도 한 가지 맛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고. 그렇게 28살에 자신의 첫 라멘가게 ‘라멘코이케(ラーメン小池)’를 오픈했다.
“요리를 잘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레서 선택한 게 라멘이었습니다. 원래는 당시 유행했던 어패류와 닭·돼지뼈 등으로 만든 츠케멘을 내세웠지만 단순히 유행을 따라간다고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이 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요. 도쿄의 유명 라멘집을 직접 찾아가 카에시(육수 밑에 깔리는 양념간장)나 육수 만드는 방법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저만의 맛을 내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라멘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라멘코이케는 2015년 미슐랭 빕그루망에 선정됐다. 이곳의 주력 메뉴는 니보시라멘. 멸치를 주재료로 만든 다시국물에 백간장으로 맛을 내 한국인도 좋아할 시원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역시 니보시라멘을 처음 먹거나 시원한 맛을 즐기는 한국인이라면 ‘앗사리(あっさり·담백한)’ 맛을 선택해 먹는 것을 추천한다. 국물을 맛 보는 순간 진한 해산물맛이 퍼지며 감칠맛이 입 안을 휘감는다. 저온으로 익힌 분홍빛의 차슈는 실크같은 부드러운 식감이 특출난다. 자른 후 시간이 지나면 자칫 건조해져 식감을 놓칠 수 있으니, 라멘이 나오면 재빨리 먹는 것이 좋다.

2018년에는 멸치와 조개로 맛을 낸 중화소바를 주력으로 한 ‘중화소바 니시노(中華蕎麦 にし乃)’가, 2020년에는 최고 수준의 면과 탱탱한 완탕을 강점으로 한 ‘킹세이멘(キング製麺)’이 미슐랭 빕그루망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종류의 라멘 가게를 오픈해 현재 9곳의 라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마다 파는 라멘의 종류와 컨셉이 전부 다르다. 그럼에도 그의 가게들이 한결같이 미식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그의 경영 노하우는 ‘사람’에 있다.
“보통 식당이 직원보다 아르바이트생이 더 많은 경우가 많습니다. 직원 1명에 아르바이트생 2~3명 비율이랄까요. 하지만, 저희는 직원 3명에 아르바이트생 1명 수준으로 사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정직원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으며, 체계적인 교육으로 음식 맛을 일관성있게 내놓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미즈하라 셰프는 자신의 가게가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행복함을 느끼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또 라멘이라는 음식이 일본 내에서도 지위가 올라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라멘의 위상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라멘업계의 고질적인 노동착취 관행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의 처우와 복지에도 더 신경을 쓴다고 한다.
“해외의 시선과 달리 일본 내에서 라멘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물론 고급화된 라멘 가게도 있지만, 전반적인 인식은 그렇지 않지요. 라멘의 고급화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고질적인 라멘업계의 처우 문제 등을 고치는 일입니다. 그를 위해 저는 직원들 처우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맞춰주려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우선돼야 라멘의 고급화, 인식의 변화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