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 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스틴 리 ‘JL디저트바’ 셰프 인터뷰

오사카에 ‘무대(MUDAE) by Justin Lee’ 오픈

한국 개인 디저트 브랜드가 일본에 진출한 첫 사례

2016년 국내 최초 디저트 다이닝 ‘JL디저트바’ 열어

‘카르보나라’, ‘토마토 플레이트’ 등 혁신적 디저트 선보여

저스틴 리 셰프 [사진=노승민, 김주연 오퍼레이터]
저스틴 리 셰프 [사진=노승민, 김주연 오퍼레이터]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테이블이라는 무대 위에서 디저트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흔히 디저트는 모든 요리의 끝에 등장하는 미식의 조연으로 여긴다. 식사를 마무리하는 달콤한 한 접시. 특히 디저트 문화가 약한 한국인에게는 있으면 좋은 정도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대 공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국내 최정상급 디저트 셰프인 저스틴 리는 디저트 역시 충분히 미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10대와 20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소비문화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바뀌고 있어요. 기성세대가 가성비에 소비의 기준을 맞췄다면,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점점 무형의 가치에도 돈을 지불하는 성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이들이 경제력을 갖게 되는 20년 후에는 한국에도 지금보다 훨씬 더 디저트 문화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요.”

JL시그니처  [JL디저트 바 제공]
JL시그니처 [JL디저트 바 제공]

소비는 습관이다. 가난을 경험했던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젊은 시절 디저트는 소비 목록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경제력이 높아진 뒤에도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소비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반면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조금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디저트를 하나의 문화로 경험한 세대에게 디저트는 단순한 후식이 아니라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MZ세대 3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신의 소비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으로 ‘가심비’를 꼽은 응답자가 46.6%로 가장 많았다. 대학내일의 조사에서도 20대의 30%가 ‘식비에 아끼지 않고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를 지불하느냐가 아니라, 그 돈으로 얼마나 재미있고 맛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느냐였다.

디저트의 시각을 비튼 공간 ‘JL디저트바’

저스틴 리 셰프. [사진=노승민·김주연 오퍼레이터]
저스틴 리 셰프. [사진=노승민·김주연 오퍼레이터]

저스틴 리가 운영하는 한남동의 JL디저트바는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2016년 문을 연 JL디저트바는 국내에서 일찍이 ‘디저트 다이닝’이라는 개념을 선보인 공간이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즐기듯 디저트를 코스로 맛본다. 그러나 이곳에서 파괴되는 것은 디저트의 형식만이 아니다. 디저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자체가 흔들린다.

저스틴 리 셰프의 ‘토마토 플레이트’와 칵테일. [사진=노승민, 김주연 오퍼레이터]
저스틴 리 셰프의 ‘토마토 플레이트’와 칵테일. [사진=노승민, 김주연 오퍼레이터]

대표적인 메뉴가 저스틴 리의 시그니처인 ‘토마토 플레이트’다. 방울토마토와 홈메이드 요거트, 바질, 파마산 치즈 아이스크림, 건조 머랭, 블랙올리브 파우더 등을 이용해 이탈리아의 카프레제를 디저트로 재해석했다. 흔히 디저트라고 하면 떠올리는 설탕과 크림의 달콤함은 이 접시의 전부가 아니다.

감칠맛과 달콤함, 새콤함이 겹치고, 바삭하게 부서지는 머랭과 부드럽게 녹아드는 아이스크림이 서로 다른 식감을 만든다. 여기에 테킬라와 토마토, 바질을 이용한 칵테일까지 곁들이면 하나의 디저트가 한 편의 코스 요리처럼 완성된다.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준, 그리고 저를 가장 잘 표현한 디저트예요. 이 디저트로 많은 수상을 할 수 있었어요.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이기도 하고요.”

카르보나라 [JL디저트바 제공]
카르보나라 [JL디저트바 제공]

디저트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시도는 이탈리안을 충격에 빠뜨린 ‘카르보나라’에서도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파스타에서 영감을 얻은 이 디저트는 우리가 디저트를 바라보는 방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파마산 치즈 위에 베이컨 젤라또를 올리고 빼꼬리노 치즈와 후추를 더한다. 곁들임으로는 애플사이다를 섞은 양파잼을 올린 브리오슈 토스트 낸다.

파스타를 삶은 식감의 파마산 치즈와 차가운 베이컨 젤라또, 짭짤한 파르메산 치즈와 후추, 달콤한 양파잼이 한 접시 안에서 충돌한다. 익숙한 음식의 이름을 빌렸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낯선 맛을 만들어낸다.

저스틴 리에게 새로운 요리의 영감은 특별한 의식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순간에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영감을 얻기 위한 특별한 의식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어느 날 문득 찾아와요. 카르보나라의 경우에는 바글바글 끓고 있는 베이컨과 치즈가 우러난 크림의 달콤한 맛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젤라또 세미나에서 카르보나라를 만들었는데, 현지에서도 굉장히 놀랐다는 반응이었어요.”

멜론 텍스처 [JL디저트바 제공]
멜론 텍스처 [JL디저트바 제공]

처음부터 그의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에 없던 디저트로 코스 요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에 가까웠다. 디저트를 전문으로 하는 공간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저스틴 리는 자신의 입맛을 믿었다.

“저는 제 입맛을 믿어요. 제가 맛있다고 느끼는 게 맛있는 요리라고 생각해요. 디저트 다이닝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저는 제 요리가 분명히 맛있다고 믿었어요.”

JL디저트바는 초기 운영의 미숙함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문을 닫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이름과 요리가 알려졌고, JL디저트바는 한국을 대표하는 디저트 공간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JL디저트바는 프랑스 라리스트가 선정한 ‘더 월드 베스트 페이스트리 숍’에 이름을 올렸다. 저스틴 리는 2024년 라리스트의 ‘올해의 페이스트리 셰프(pastry talent chef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4년과 2025년에는 테이스트 오브 서울 ‘베스트 카페&디저트’에 선정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저스틴 리’, 이름이 브랜드가 되다

오사카 콘래드 호텔에 위치한 ‘무대(MUDAE) by Justin Lee’ 전경. [무대(MUDAE) by Justin Lee 제공]
오사카 콘래드 호텔에 위치한 ‘무대(MUDAE) by Justin Lee’ 전경. [무대(MUDAE) by Justin Lee 제공]

저스틴 리는 올해 3월 일본 오사카 콘래드 호텔에 ‘무대(MUDAE) by Justin Lee’를 열었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오사카 콘래드였다. 자존심 강한 디저트 강국 일본에서 한국의 디저트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남다르다.

더 주목할 것은 ‘무대’가 국내 디저트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개인 IP를 연간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방식으로 일본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이제 ‘저스틴 리’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무대(MUDAE) by Justin Lee 제공]
[무대(MUDAE) by Justin Lee 제공]

‘무대’라는 이름에는 그의 정체성도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어 이름을 그대로 내건 이 공간은 일본의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그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방식은 한국에서 출발한다. 현지에서 근무하는 스태프들 역시 한국에서 트레이닝을 거쳤다. 일본의 재료와 환경 위에 한국에서 시작된 저스틴 리의 감각을 올려놓은 셈이다.

“무대는 일본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현지의 식재료와 문화를 제 방식으로 해석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무대라고 생각해요.이 경험을 통해 일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각 지역의 색을 담은 저만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20년 디저트 인생 그 다음 장

저스틴 리 세프. [사진=노승민, 김주연 오퍼레이터]
저스틴 리 세프. [사진=노승민, 김주연 오퍼레이터]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저스틴 리의 어머니는 IMF 외환위기 당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식당 일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한식조리장으로 일한 뷔페는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에서 타고 찾아올 정도로 이름난 맛집이 됐다.

진로를 바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조금씩 디저트도 만들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케이크 카페에 입사해 투잡을 뛰었어요. 낮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밤에는 빵을 만든 거죠. 하루에 3시간 30분만 잘 수 있었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일했어요.”

참외 타르트 [JL디저트바 제공]
참외 타르트 [JL디저트바 제공]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린 그는 호주를 거쳐 뉴질랜드로 떠났다. 당시 뉴질랜드의 최고 셰프인 레스토랑 클루니의 데스 해리드(Des Harris) 셰프에게 트라이얼을 통과한 후 페이스트리 섹션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떄 세계적인 페이스트리 셰프 브라이언 캠벨(Brian Campbell) 셰프를 만났다. 캠벨 셰프는 새롭게 오픈하는 빠띠세리 ‘미안(Miann)에 스카웃 제의를 했고 그는 캠벨과 함께 일을 할 기회를 얻는다. 캠벨은 현대적인 분자 요리 기법을 디저트에 많이 사용했다. 디저트를 후식이 아닌 하나의 요리로서 미식의 경험을 확장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들은 저스틴 리 셰프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요리 문화가 모이는 영국에서 요리를 하셔서 트렌디한 방식을 잘 알고 있었어요. 분자요리와 같은 모던 스킬을 그때 배울 수 있었어요. 제게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파운드 치즈케이크 [JL디저트바 제공]
파운드 치즈케이크 [JL디저트바 제공]

저스틴 리의 다음 목표는 의외로 소박하다. 더 거창한 상이나 세계적인 명성을 좇기보다 지금의 공간을 오래 지키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지금 JL디저트바를 앞으로도 20년 이상, 제가 요리를 멈춰야 할 때까지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디저트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 그런 미래도 막연한 꿈은 아니지 않을까요.”

테이블 위에서 디저트는 정말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저스틴 리의 대답은 이미 하나의 접시 위에 놓여 있다. 우리가 디저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재료들이 한 접시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디저트의 미래는 더 달콤해지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디저트라고 생각했던 경계를 넘어서는 것. 그리고 그 순간 디저트는 식사의 마지막이 아니라, 가장 오래 기억되는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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