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기종 결정 로드맵 무산…사업 지연 불가피

현대로템 ‘셰르파’·한화에어로 ‘아리온스멧’ 경쟁

2020년 양사 모두 ‘0원’ 제시해 가위바위보 결정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자체 개발한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 (Arion-SMET)이 미국 해병대 훈련장에서 성능 시험을 갖는 모습. [헤럴드DB]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자체 개발한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 (Arion-SMET)이 미국 해병대 훈련장에서 성능 시험을 갖는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500억 원 규모의 다목적 무인차량사업이 소모적 논쟁에 발목 잡혀 결국 군 전력화가 지연되고 말았다.

다목적 무인차량사업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496억 3000만 원을 투입해 보병 전투원의 생존성을 보장하면서 감시·경계·작전지속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무인차량을 국내구매로 획득하는 사업이다.

현대로템 ‘셰르파’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아리온스멧’이 최종 기종결정을 앞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다목적 무인차량’, 육군 ‘아미타이거’의 핵심

다목적 무인차량사업은 2020년부터 시작됐다.

방위사업청 주도로 민간의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구매해 군이 시범운용해본 뒤 신속히 전력화화는 신속시범획득사업 과제로 출발했다.

38억 원을 투입해 다목적 무인차량 2대를 선정하는 신속시범획득사업에선 현대로템이 선정됐다.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이었던 한화디펜스가 최저가수주를 위해 모두 입찰가를 ‘0원’을 써내는 바람에 ‘가위바위보’로 결정한 결과였다.

이후 육군 6사단과 지상군작전사령부 드론봇전투단에서 시범운용을 거쳐 군사적 활용성을 인정받았다.

육군은 다목적 무인차량이 위험지역 투입 등을 통해 보병 전투원의 생존성과 전투효율성을 높이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며, 감시정찰과 경계를 비롯한 전투보장활동과 탄약·물자수송 및 환자후송 등 작전지속지원 측면에서도 군사적 활용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다목적 무인차량은 육군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전쟁 양상 변화를 고려해 추진 중인 유무인 복합전투수행이 가능한 지상전투체계 ‘아미타이거(Army Tiger) 4.0’의 주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다목적 무인차량사업은 2022년 7월 합동참모회의에서 긴급소요로 결정됐다.

이후 선행연구와 정책연구용역 등 절차를 밟아 작년 4월 입찰공고와 5월 제안서 평가를 마쳤고, 같은 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육군 시험평가단의 구매시험평가를 통해 현대로템 ‘셰르파’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아리온스멧’ 모두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잘나가던 ‘다목적 무인차량’ 전력화 지연 우려

이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다목적 무인차량사업은 돌연 논쟁에 휩싸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다목적 무인차량사업에 참여한 한 업체는 방사청이 제시한 절차와 안에 전부 동의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다른 업체는 작년에 제안서를 제출할 때 제시한 수치가 최대수치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최대수치를 추가로 낼 테니 재확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청이 명확한 평가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런데 방사청이 작년 4월 입찰공고 뒤 가진 사업설명회에서 공개한 제안요청서(RFP)에는 최대성능확인을 비롯해 기종결정 평가 항목과 기준이 명시돼 있다.

방사청은 사업설명회 자리에서 업체 측의 최대성능확인 방안 관련 질의에 6개 항목은 구체적인 수치 확인이 가능한 평가 항목이라는 이유로 상대비교를 통해 평가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방사청이 사업설명회에서 평가 기준과 방식, 환경조건, 제출서류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안요청서 배포 뒤 이의 제기 기간도 있었는데 이 기간에는 어떤 이의 제기도 없다가 뒤늦게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의 다목적 무인차량. 원격주행, 종속주행, 자율주행 등 3가지 주행모드가 가능하다. [헤럴드DB]
현대로템의 다목적 무인차량. 원격주행, 종속주행, 자율주행 등 3가지 주행모드가 가능하다. [헤럴드DB]

다목적 무인차량 기종결정을 앞두고 실물평가가 아닌 서류평가를 우선시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육군 시험평가단은 5개월여 간의 실물평가를 기본으로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안한 다목적 무인차량의 성능을 검증했고 이를 토대로 두 업체 모두 군 요구 성능을 충족한다고 판정했다.

방사청 역시 최대성능확인을 위해 6개 항목 중 2개 항목은 육군 시험평가단 검증을 적용하고 남은 4개 항목은 동일 장소, 동일 조건에서 실물평가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업체가 제출한 성능입증 자료가 다른 환경과 장소, 조건 등에서 측정됐다는 이유로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실정과 거리가 멀다.

방사청은 이번 사업 관련 제안요청서에 국가·국제·공인기관 인증서나 증빙된 성능입증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작년 10월 기준 공인성적서 발급이 가능한 방사청 전문연구기관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국기계연구원(KIMM), 한국자동차연구원 등 총 35개에 달한다.

성능입증 자료 발급이 가능한 기관이 여러 곳인 만큼 업체들이 선택하는 기관도 제각각인 게 현실이다.

다만 시험조건과 방식은 군의 요구조건을 근거로 하며, 최고속도의 경우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부터 계산방법까지 매우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환경과 장소, 조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정성과 형평성을 문제 삼는 것은 마치 서울 운전면허시험장이 부산이나 인천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과 다르기 때문에 운전면허증도 차이가 있다는 식의 얘기밖에 안 된다.

방사청 “기종결정 법무검토 중 사업 조금 늦어질 듯”

일각에선 실물평가 과정에서 제안서에 명시한 성능보다 높은 수치가 나오면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제안서에서 다목적 무인차량의 최고시속을 40㎞라고 기재했는데 실물평가에서 60㎞가 나오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방위사업에 밝은 소식통은 “방위사업은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을 시작으로 제안요청서 작성과 입찰공고 뒤 제안서를 접수받아 평가하고 시험평가를 거쳐 기종결정과 계약, 전략화 수순을 밟는다”며 “시험평가에서 제안서보다 좋은 성능이 나온다면 제안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식통은 이어 “무엇보다 시험평가 때 개조한 장비를 들고 온다면 최고시속 등이 좋게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부분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검증할 수 없고 다시 처음부터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군이 쓸 장비인데 제안서와 다른 성능에 따른 내구성이나 효율성 등도 보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위사업관리규정에서 제안서 접수 후 수정 및 보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문제는 소모적 논쟁이 벌어진 탓에 다목적 무인차량 전력화가 지연됐다는 점이다.

애초 방사청은 육군 시험평가단이 올해 2월 구매시험평가를 마친데 따라 이달 중 협상을 마무리하고 이르면 5월, 늦어도 6월까지 기종을 결정하고 계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이 같은 로드맵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방사청 관계자는 “현재 기종결정과 관련해 법무검토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 “사업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대상업체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정량·상대평가 확인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무검토 후 신속한 기종결정을 추진하겠다”며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입장을 정리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