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분과위, 민간위원 반대로 세 번째 무산

한덕수 HD현중 방문·민주 알박기 비판 정쟁화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형. [헤럴드DB]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형. [헤럴드DB]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항로가 또다시 안갯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KDDX 사업을 둘러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지나친 과열경쟁에다 주무부처인 방위사업청의 우유부단이 더해지면서 빚어진 낭패다.

방사청은 24일 오후 방위사업기획관리 분과위원회(분과위)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계획안’을 심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KDDX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국방부 차원의 사업추진방안 점검과 국회 대상 설명 과정을 거친 후 분과위에 재상정하기로 해 안건 보류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 예정됐던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위원장을 맡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도 KDDX 관련 안건은 아예 올라가지 못하게 됐다.

애초 이날 분과위에서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의계약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결론날 것으로 예상됐다.

통상 함정사업은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절차를 밟는다.

KDDX 사업의 경우 2012년 개념설계, 2023년 기본설계, 2024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 로드맵에 따라 진행돼왔다.

이 과정에서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 수행했다.

수의계약으로 결론났으면 자연스럽게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맡게 된다.

함정사업은 기본설계 단계에서 핵심기술 적용과 탑재장비 사양·성능 등을 모두 결정하고 상세설계 단계에서 이를 구체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과위에 참여한 민간위원들이 수의계약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국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분과위는 19명의 정부위원과 6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앞서 방사청은 지난 18일과 21일 민간위원을 대상으로 선행보고를 가졌다.

방사청이 분과위에 앞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과 함께 상생협력방안을 모색했으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수의계약으로 가닥을 잡고 민간위원 설득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민간위원들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초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복수 방산업체로 지정했다는 등의 이유로 수의계약에 여전히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고 한다.

이날 분과위에선 다수결로 결정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분과위에서 반대가 나온 사업을 방추위에 상정해 추진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결국 보류로 접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부 사업의 경우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반대표를 행사하진 않고 기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100% 찬성표의 모양새를 취했는데 이날 분과위에서는 일부 민간위원들이 반대표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지난달 17일 분과위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27일 예정했던 분과위에는 아예 안건을 상정조차 못한데 이어 세 번째 무산된 것이다.

한화오션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모형. [헤럴드DB]
한화오션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모형. [헤럴드DB]

여기에 6·3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KDDX 사업은 한층 더 꼬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KDDX 사업을 둘러싸고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오전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방부가 4월 내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들려온다”면서 “K-방산을 선도하는 분야에서 방산비리, 방산 게이트를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 의원은 “정권이 2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알박기’를 감행하는 저의를 알기 어렵다”면서 “당장 방산 알박기를 멈추기 바란다”며 향후 감사원 감사 청구를 비롯한 모든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울산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총리실은 미국발 관세전쟁 관련 정부 지원을 점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분과위를 코앞에 둔 민감한 시기에 사실상 특정업체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이 뒤따랐다.

KDDX 사업이 이미 1년가량 지연된 가운데 이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되자 해군의 속은 타들어가는 모양새다.

앞서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2월 말 이례적으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보낸 서신을 통해 “엄중한 현 안보환경 속에서 주요 함정의 전력화 시기 지연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며 “국가안보와 번영을 위해서도 중요한 만큼 해군의 핵심전력들이 적기에 확보되도록 많은 관심과 노력을 당부드린다”고 호소한 바 있다.

일각에선 6·3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 뒤 백지 상태에서 무인화 등 첨단기술을 반영한 새로운 함정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그러나 해군 안팎에선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접경수역 도발 가능성과 일본의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을 하나의 전역으로 묶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 그리고 중국의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무단 구조물 설치 등 해양안보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KDDX 전력화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KDDX 사업은 2036년까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7000t급 ‘미니 이지스함’ 구축함 6척을 확보하는 국책사업이다.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