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의 영상 작품 ‘다크 라이드’(2025). [국립현대미술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4/news-p.v1.20250424.030eddecb2b34f5ba125bfe4ca67dd1b_P1.jpg)
[헤럴드경제(과천)=이정아 기자] 관람객을 단지 전시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가두지 않는다. 중국 선양의 랴오닝 호텔에서 만주로 간 조선인들의 자취를 훑고, 테마파크의 ‘귀신의 집’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혼란과 마주하거나, 유빙이 떠 있는 일본 홋카이도 북동부의 얼어붙은 풍경에 발을 들이게 만든다.
동시대 청년 작가들이 마주한 감각과 고민들은 이처럼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을 포개 놓는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 기억과 실재가 서로 뒤엉키며 흐릿한 경계를 드러낸다. 그렇게 ‘지금, 여기’라는 이름의 오늘날의 예술과 조우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가 24일 개막했다. 지난 1981년 ‘청년작가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전시는 격년제로 열리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진 작가 발굴 통로가 됐다. 그간 이불, 최정화, 서도호, 문경원 등 한국의 주요 작가들이 젊은 모색을 거쳤다. 22회째를 맞은 올해 전시에는 39세 이하 국내 작가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와 외부 전문가들의 추천과 자문을 거쳐 선정한 20명(팀)의 신작이 소개된다.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4/news-p.v1.20250424.70ed64e9592841218f749961567eb004_P1.jpg)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4/news-p.v1.20250424.b9e3d071869845a7b8700352d021e428_P1.jpg)
올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 작가의 약 80%가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정체성에서 기술과 노동,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붙든 주제는 하나같이 흐르고 변하는 세계의 단면 속에 존재하는 ‘나’다. 고정된 이미지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현실의 결들이 영상이라는 매체에 담겨 새로운 이야기의 실타래를 엮는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는 세 점뿐일 정도로 영상을 활용한 작업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시대에 따라 예술을 담는 매체는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 작가는, 매체를 넘어선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뉜다. 전시 도입을 알리는 ‘기술 너머’에서는 김을지로, 송예환, 상희, 이은희 작가가 디지털 세계에서 등장한 새로운 종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들은 기술로 확장된 공간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감각과 소통을 게임, 인터랙티브 웹사이트, 3D 그래픽 등으로 실험한다.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낸 윤리적·사회적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 너머에 있는 건 기술에 함몰되지 않는 이야기와 사유의 길이다.
이어 ‘관계 맺기’에서는 권동현x권세정, 조한나, 장한나 작가가 인간 중심적 관점을 재고하게 한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인간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해체하거나 해풍과 태양열로 변형돼 암석화된 플라스틱을 ‘뉴 락’(New Rock)으로 명명한 뒤 전국에서 수집하는 식이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공존이 연대의 실마리를 모색하게 한다.
![장한나의 설치 작품 ‘Being’(2025). [국립현대미술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4/news-p.v1.20250424.f8350b99e3d64cce8215115dcc71d813_P1.jpg)
![김진희의 회화 작품 ‘무게가 없는 것들’(2025). [국립현대미술관]](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4/news-p.v1.20250424.6c79c1e0f83a41c299c3110c20121560_P1.jpg)
‘타자로서 타자에게’와 ‘함께하기’는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생긴 틈과 상처를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무니페리, 김진희, 조한나 작가는 내밀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어 강나영, 야광, 정주원, 다이애나랩은 타자를 수용하는 환대의 가능성을 살펴보며 낯선 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미학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나이와 성별, 인종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인물 이미지에 고전 회화의 표현을 접목한 김진희의 회화가 눈에 띈다. 2030 작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이 다루는 예술의 본질을 엿보여 주고 있어서다. 작가는 “아주 하찮은 과자 봉지에도 ‘나’라는 존재가 스며들어 있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초상화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젊은 혹은 모색’에서는 성전과 3폭 제단화를 연상케 하는 작가 집단인 업체(eobchae)의 설치 작품인 가상의 성지와 6인의 성인 캐릭터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다. 기술과 자본에 대한 상징을 내재한 캐릭터의 전기는 마치 종교 집단이 계시를 받아 진리를 찾는 과정처럼 기묘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3000원.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