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인형극단 렐레에서 초연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인형극 한 장면 [출처 빌뉴스인형극단 렐레 홈페이지/유튜브 캡처]](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2/news-p.v1.20250415.50fe1e3ddeee4cbb99a63fa48af3b578_P1.jpg)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어느 화실에서, 헨리 경은 친구인 화가 배질 홀워드가 그린 초상화 속의 잘생긴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감상한다. 도리언은 아름다운 초상화에 흡족해 하고 헨리 경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음과 쾌락이라고 말한다. 도리언은 극단 여배우 시빌 베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는다. 도리언은 헨리 경과 배질을 시빌이 출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초대한다. 시빌은 도리언의 기대와는 달리 형편없는 연기를 펼친다. 크게 실망한 도리언은 시빌에게 매정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초상화가 조금 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슬퍼한다. 도리언은 시빌에게 사과하려 했으나, 헨리 경은 시빌이 자살했음을 알린다. 충격받은 도리언에게 헨리 경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가 영원히 젊고 아름답지만 자신은 점차 늙어갈 것이라며 한탄한다. 초상화가 자신 대신 늙어 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게 되고, 그 기도가 이루어져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된다. 그는 자신 대신 늙어가는 초상화에 장막을 씌우고 집안 구석에 감춰둔다. 도리언은 헨리 경이 선물한 부도덕한 소설책에 큰 영향을 받으며 쾌락만을 추구하는 방탕한 삶에 빠져들고 그의 평판은 날이 갈수록 나빠진다. 어느 날 배질 홀워드가 도리언을 찾아온다. 도리언은 그의 영혼을 보고 싶다는 배질에게 감춰뒀던 초상화를 보여준다. 예전의 아름다움은 흔적만 남은 채 추악하게 늙어버린 초상화를 보고, 배질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도리언에게 기도할 것을 종용하는데 도리언은 분노에 휩싸여 배질의 머리에 칼을 꽂아 죽인다.
도리언은 헨리 경에게 자신의 여러 번에 걸친 살인을 고백하고, 앞으로는 정의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도리언은 시골 마을의 순박한 소녀 헤티 머턴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다시 자신의 추악한 초상화를 보고, 도리언은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동기가 허영과 위선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는다. 초상화를 없애고 평정을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도리언은 배질을 죽였던 칼을 들어 초상화를 찌른다. 방 안에는 젊고 아름다운 초상화와 늙고 추악한 남자의 시체만이 남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로 시체가 도리언 그레이였음을 확인한다.
인생 전반에 걸쳐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돈을 잘 벌고, 잘 쓰고, 잘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황금기에 돈을 낭비하고 신세를 망치는 유명인의 슬픈 스토리를 생각해 본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쓴 소설가로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돈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젊었을 적엔 돈이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알았다.”
젊었을 때 돈을 모으지 못하고 낭비한 자신에 대해 고뇌에 찬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동성애 사실이 들어나서 조국에서 추방되어 1900년 남자 연인이 있는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지금 같으면 한창 돈을 벌 나이인 55세에 뇌수막염에 걸려 쓸쓸히 사망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 부르주아 계급이 부상했다. 혈통 중심의 귀족주의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 계층의 척도로 신사의 취향을 내세우는 댄디즘(dandyism)이 탄생했다. 기존의 체제와 가치관에서 벗어나 세련된 취향을 내세운 신사들은 전방위적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였다. 그 한 가운데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오스카 와일드가 있었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소설을 쓰면서 사회와 예술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교훈적이고 권선징악적인 동화의 한계를 넘어서 충격적인 결말은 그만의 특징으로 통한다. 그의 패션 센스는 남달랐다. 그가 애용한 아이템을 보자. 무릎 아래의 통이 좁은 바지, 스모킹 자켓, 커다란 라펠이 달린 벨벳 코트, 초록색 타이, 망토, 챙 넓은 모자...심지어 그는 백합이나 해바라기를 손에 들거나 라펠에 꽂은 당대의 패션을 선도한 인물이었다.
![나폴레옹 사로니가 1882년 촬영한 오스카 와일드 사진. [퍼블린 도메인]](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2/news-p.v1.20250415.51cb2cf3026746e08bdc0c407e338d17_P1.jpg)
부와 명성을 모두 손에 쥔 잘나가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몰락시킨 것은 스캔들이었다. 와일드는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도 둘이 있었지만 무료한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낀 동성애자였다. 그는 1891년 소개로 16세 연하의 옥스퍼드 대학 동문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의 관계는 평범한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 일방적인 더글러스의 사치와 향락 그리고 히스테릭한 성격에 와일드는 인생 전체를 소모했다. 와일드는 더글러스 때문에 2년 반 만에 무려 5,000 파운드를 소비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한화 약 14억원 가량이라고 한다. 영국의 금리는 17세기 후반까지 만해도 10%-15%이상이었다. 정부가 금리문제에 간여하여 중앙은행과 긴장을 빚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다. 1800년 프랑스은행을 설립할 때 나폴레옹이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다. 대출 금리를 연6%로 유지하고자 했다. 당시 영국 금리수준은 연6%, 프랑스는 연7%였다. 나폴레옹은 높은 금리 때문에 프랑스 경제가 성장하기 어렵고 서민의 삶도 고달프다고 판단했다. 이달 들어 관세전쟁과 함께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급등락을 하며 미국의 신뢰에 먹칠을 했다. 높은 금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더글라스는 돈이 필요할 때만 오스카 와일드에게 나타났다. 더글라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은 아들과 그의 애인의 이러한 행각에 수치심을 느꼈다. 퀸즈베리 후작은 오스카 와일드가 수많은 소년들을 추행했다는 ‘남색 오스카 와일드’라며 동성애자 혐의로 그를 고발했고 와일드 역시 명예훼손죄로 퀸즈베리 후작을 고소한다. 와일드는 법정에 섰고 검사 측에서 “와일드와 성관계를 하였다는 남성들을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와일드와 그의 변호사들은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여 고소를 취하했다. 결국 와일드는 이로 인해 파산게 된다. 와일드가 죽고 나서 1902년에 알프레드 더글러스는 결혼하는데, 아내인 올리브 쿠스탄스는 양성애자 시인이었다고 한다.
도리안 그레이에서 그레이에 동그라미를 쳐 본다. 그레이는 어두침침함에 엄숙함을 더한다. 회색은 거무스름한 어둠에서 눈부시게 환한 흰색까지의 넓은 범위를 지닌 색깔이다. 흑과 백사이에 무수한 회색이 있고 그 회색의 미학은 우리네 삶과 같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에 담긴 진실도 회색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회색지대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뭔가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해야 한다. 회색지대를 경제학에서 사용한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마스 셸링이나, 그는 이를 군사용어로 사용했다. 여기서는 삶과 관련해서 이야기 해 보기로 한다.
첫째, 경제 시스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회색 지대가 지역 곳곳에 존재한다. 사회적 기업은 우리 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회색지대의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업이 활동하는 제1섹터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공공 조직이 참여하는 제2섹터는 공익을 추구한다. 이들 경제 주체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로 취약 계층 일자리를 생각해 보자. 기업들은 채산성이 낮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이 노인·장애인을 우선 고용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포용적 사회는 길목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둘째, 종합소득세를 내는 고액 소득자에게 절세는 너무나도 중요한 분야다. 실상은 절세와 탈세 사이에 회색지대가 있기에 납세자는 세무사를 고용해서 세금을 줄이려고 한다. 그러나 자칫 절세를 잘못하다 큰 코 다치는 경우가 흔하다, 모든 절세 설계와 절세 컨설팅은 각 법률과 세법의 범주 안에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꼼꼼한 연구 없이 법령을 자의적으로 유추 해석해 잘못된 절세 컨설팅을 한다면 원래의 세금 외에 각종 가산세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의주시하는 ATP(Aggressive Tax Planning)는 입장에 따라서 때로는 공격적 조세회피로, 때로는 적극적 절세로 번역된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회색지대에 있고 절세는 교양의 지위를 점유한다.
셋째, 금융 소비자는 금융회사의 전략적 모호성의 희생자가 되지 않아야 자신의 돈을 지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금융소비자의 오류는 쉽게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며, 설령 금융상품이 위험하다는 정보가 공개되어도 이를 무시하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현실에는 금융문맹이 많다. 이를 이용하여 금융회사 직원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불완전 판매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과거 수익률이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돈을 잘 벌었고 앞으로도 수익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동경제학의 보유효과나 확증편향이 이런 현상을 유발한다. 금융회사나 금융당국은 이런 불완전 판매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금융 소비자는 꼼꼼히 상품 관련 내용을 따져 보며 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시대를 떠나 당대에는 굉장히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남성 연인에게 퍼주기 인생을 하며 맺고 끊음을 제대로 못하다 돈을 낭비한 그에게 소설 주인공 그레이(회색)가 특별한 의미를 준다면 과장일까? 삶은 흑과 백의 이분법보다 훨씬 복잡하다.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사안들을 잘 해결 하면 적어도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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