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올해 아트바젤 홍콩 신진작가상 수상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정제된 유니폼에 검은 머리망까지 갖춘 여성은 존재 자체로 ‘서비스’다.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게 눌러 담은 얇은 망 속에는 그의 말투와 미소, 몸짓까지도 규격화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하나의 인격이라기보다 ‘상품’. 신민(40) 작가는 외국계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등에서 일하는 저임금 고강도 여성 노동자를 전시장 한복판에 데려온다.
그런데 작품을 들여다보면, 검은 머리망을 단단히 눌러쓴 여성 노동자가 입을 삐죽 내민 채 눈을 흘기고 있다. 무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음식과 음료에 떨군 머리카락 몇 가닥. 누가 흘렸는지 알 수 없는데도 그는 같은 머리망을 쓴 또 다른 여성 노동자를 쏘아본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분노와 피로가 섞인 시선이 내면화된다.
서울 용산구 P21 갤러리에서 신민의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올해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에서 신진작가에게 주는 ‘MGM 디스커버리 아트 프라이즈 어워즈’를 수상하면서 최근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작가의 신작이 소개된 자리다.

대학 시절부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10년 넘게 해온 작가는 “순종적인 며느리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 머리망은 환한 미소로 친절하게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며 “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털을 떨구지 않도록 조심하고 긴장하는 애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작가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털에 주목했다. 아무리 빗질하고 머리망을 써도 머리카락 한 올이 느닷없이 떨어지기 마련. 그런데 그 책임은 어김없이 늘 개인의 부주의로 돌아간다. 작가는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시스템이 가진 모순을 이처럼 머리망으로 은유했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 머리망을 하고 있으면 내 신체가 멸균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라며 “그런데 아무리 주의해도 통제된 머리망 밖으로 빠져나오는 머리카락은 인간 노동자의 흔적인데, 우리는 왜 털에 혐오감을 느끼는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신민의 유주얼 서스펙트 시리즈 중 ‘누구야 누가 음료에 머리카락 떨궜어 CCTV 판독해서 잡는다’(2025). [P21]](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16/news-p.v1.20250416.5408bf2f58dc4105af0a3f6527374b30_P1.png)
작품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누구야 누가 음료에 머리카락 떨궜어 CCTV 판독해서 잡는다’, ‘민정(검은머리짐승들이여 두피에 힘줘 안 빠지게)’, ‘음료 나가기 전에 이물체크 또 체크’ 등 작품명은 그 자체로 일상을 지배한 의심과 통제의 언어다.
그는 “고객의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이 ‘너냐?’ 같은 표정으로 서로에게 눈치를 준다”며 “작품은 내 자화상이자, 분노하고 슬퍼하는 마음에 대한 위로이자, 여성성에 일으키는 작은 균열”이라고 설명했다.
기름에 절여진 감자튀김 포장지를 자르고 겹겹이 붙인 뒤 연필로 스케치해 그린 작가의 작품마다 ‘서비스’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인간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는 외국계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할 때마다 내다 버릴 감자튀김 포장지를 모았다. 그는 “포장지에 밴 기름때가 마치 저임금 노동자의 땀 같았다”며 “잘 찢기고 잘 지워지는 종이와 연필 대신, 화방에서 비싼 화구를 사용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돈 버리게 될까 봐 작업이 안 됐다”며 웃었다.
전시는 내달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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