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첫공판 14일 8시간 21분 만에 종료
82분 셀프변론…헌재 최후진술과 판박이
국회 출동 군인들 “‘국회의원 끌어내’ 지시 받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변론을 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15/news-p.v1.20250415.a18d09fca5444a78ad74255f22e57f6a_P1.jpg)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몇 시간 만에, 비폭력적으로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한 계엄을 내란으로 구성했다는 것 자체가 법리에 맞지 않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그날 시간적·공간적으로 저희는 충분히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임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신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에 출석해 82분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에서 했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첫 증인으로 출석한 군인들은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하달됐다고 증언했다.
尹 헌재 판단 부정하며 내란 혐의 부인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부장 지귀연)은 전날인 14일 오전 10시께부터 오후 6시 20분께까지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피고인 인정신문, 검찰의 공소 요지 진술, 윤 대통령 측의 모두 진술,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 1분부터 약 1시간 7분 동안 공소 요지를 진술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헌법·법률 기능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헌법·법률에 위반되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군경을 동원, 국회·선거관리위원회·민주당사·여론조사 꽃 등을 점거해 출입을 통제하고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혐의를 부인했다. 오전 40분, 오후 42분 등 총 82분 동안 검찰의 발표자료를 하나하나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은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으로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군정을 실시하려는 계엄이 아니었다”고 했다.
형법 87조에 규정된 내란죄는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은 국가 비상사태를 알리기 위한 호소용·경고성 계엄으로 국헌문란 목적이 없었고, 군 병력 등을 동원해 일으킨 ‘폭동’도 없었다는 취지다. 지난 탄핵 심판에서 했던 주장과 동일하다.
하지만 앞서 헌재는 12·3 비상계엄이 실체적, 절차적으로 위헌·위법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근거가 없었다.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판단으로 계엄을 선포해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했다”고 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방해,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위치 추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 등 ‘폭동’의 근거가 되는 기초 사실도 모두 인정했다.
현장 지휘한 군인 2명 ‘국회의원 끌어내’ 증언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15/news-p.v1.20250415.22a894a5238f4ac79ad66377b73bf09b_P1.jpg)
하지만 이날 증인들이 전한 12·3 비상계엄 당일의 상황은 윤 전 대통령의 주장과 달랐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 모두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특히 김 대대장은 당시 이상현 전 1공수여단장과 주고받은 통화 녹음과 다음 날인 2024년 12월 4일 부대 복귀 직후 작성한 작전일지를 바탕으로 세세하게 증언했다. 김 대대장에 따르면 1특전대대 소속 군인 134명이 국회 앞에 도착했다.
김 대대장은 “12시(0시) 30분에 이상현 여단장이 3가지 임무를 부여했다. ‘담을 넘어라’, ‘본청에 가서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했다”며 “그때 제가 전화를 끊고 ‘국회의사당 주인은 국회의원인데 무슨 소리냐’고 하는 것을 부하들이 들었다”고 했다.
이 전 사단장의 지시를 받고 김 대대장을 포함한 49명이 국회 담을 넘었다. 김 대대장은 경내 진입 후 “0시 48분에 통화하면서 (이 전 사단장이) ‘의결하려고 하니 문 부수고서라도, 유리창 깨서라도 끄집어내라’고 몇차례 지시했다”고 했다.
김 대대장에 따르면 1특전대대는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시민들과 군인이 대치하고 있어 후문으로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했다. 김 대대장은 정문 대치 중인 시민들을 보고 “제 뒤의 병력만 가지고 돌파하려면 할 수 있었다. (그러려면) 물리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시민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의구심이 들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날 시간적, 공간적으로 충분히 여단장이 부여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임무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대대장은 군과 시민의 대치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거셌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군인들과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대대장은 “담을 넘으면서 (군인들이) 너무 많이 맞아서 흥분한 상태였다. 이유 없이 맞기 시작하니 젊은 친구들 눈동자가 돌아가는게 보였다”며 “제가 ‘하지마, 물러서, 돌아서’라고 했다. 병력들이 맞으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 신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