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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최초 비정치인 총리 마크 카니

지난 23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마크 카니  총리가 조기 총선을 선언한 후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지난 23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마크 카니 총리가 조기 총선을 선언한 후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마크 카니!”

3월 9일 오후 6시 캐나다 수도 오타와 로저스센터에서 집권당인 자유당의 새 당대표가 호명됐다.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가 1월 6일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힌 지 약 두 달여만이었다.

선거는 2월 26일 오전 8시~3월 9일 오후 3시 자유당 전체 당원 16만3836명 중 15만1899명(투표율 92.7%)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졌다. 선거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3일 뉴파운드랜드 세인트 존스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23일 뉴파운드랜드 세인트 존스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4명의 후보 중 과반을 넘은 사람은 마크 카니 전 캐나다중앙은행 총재가 유일했다. 카니 후보의 득표율은 86.84%에 달해 10%도 확보하지 못한 다른 후보들과는 격이 달랐다.

의원직에 한 번도 선출되지 않은 정치 신인이 집권 여당에서 기성 정치인들을 일거에 제압한 것이다. 캐나다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에 대한 ‘관세 공격’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조롱성 엄포를 극복할 마지막 자존심으로 비정치인 출신 경제 전문가를 택했다.

외국인 출신 첫 영국중앙은행 총재

영국식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캐나다에선 단독 과반의석을 차지하거나,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최다 의석 정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로이터 통신은 “정치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캐나다 총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마크 카니 신임 캐나다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북극권에 인접한 누나부트 준주를 방문해 북극 안보를 점검하고 있다. [AP]
마크 카니 신임 캐나다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북극권에 인접한 누나부트 준주를 방문해 북극 안보를 점검하고 있다. [AP]

또한 2013∼2020년 외국인으로선 사상 처음으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총재를 맡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경제 충격에 대응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라는 그의 이미지 또한 캐나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선거의 핵심 질문은 ‘트럼프에 맞서 캐나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였다”고 전했다. 캐나다 여론조사기관 앵거스 리드에 따르면 캐나다인들은 카니 총리가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폴리에브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능숙하게 상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제 상을 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캐나다 새 총리 마크 카니

한편, 카니 총리는 지난 14일 취임 후 임기를 시작했지만, 보수당이 주도하는 총리 불신임안 처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이달 말 개회하는 의회에서 불신임안이 처리될 경우 카니 총리는 역대 최단 기간 재임 총리가 된다.

이 때문에 캐나다 선거법에 따라 4년마다 실시하는 총선은 오는 10월 20일 전에 치르면 되지만, 카니 총리는 오는 4월 28일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현역 의원이 아니더라도 총리에 취임할 수 있지만, 기존 관행을 고려할 때 총리는 가능한 한 일찍 의원직을 확보해야 한다.

만약 조기 총선에서 카니 총리가 당선되고, 자유당이 과반을 확보하게 되면 카니 체제는 확고한 기반 속에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

아이스하키 골키퍼 어린 카니…캐나다, 아일랜드, 영국 국적만 3개

마크 카니 총리가 중학생 시절 아이스하키팀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마크 카니 홈페이지]
마크 카니 총리가 중학생 시절 아이스하키팀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마크 카니 홈페이지]

제24대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는 1965년 3월 16일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準州)의 남부 소도시 포트 스미스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첫째 형과 둘째 누나, 막내 남동생이 있다. 그의 부친은 고등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주부였으나 훗날 부모 모두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아 교육계에 종사했다.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카니는 출생 당시부터 아일랜드와 캐나다 국적을 보유했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총재로 재임 중이던 2018년에는 영국 국적까지 얻었다. 카니가 6세일 때 가족들은 석유 생산지인 앨버타주의 에드먼턴으로 이주했다.

또 카니가 10세일 때 모친이 대학에서 공부를 재개했고, 고교 교장 선생님을 역임한 카니의 부친 로버트 카니는 이곳에서 주정부 공무원, 앨버타대 교수(교육역사학) 등으로 재임하다가 1980년 연방 의회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우리집은 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날그날 사회 이슈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

마크 카니

카니는 어린 시절에 대해 “우리집은 책으로 가득차 있었다”며 “그날그날 사회 이슈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고 회고했다. 카니는 로리어 하이츠 중학교 재학 중 아이스하키팀 골키퍼로 활약했고, 에드먼턴 서부의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 진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경험을 살려 하버드대 아이스하키팀에서도 골키퍼로 참여했는데, 그는 자신의 아이스하키 실력에 대해 “그다지 잘한 편은 아니었다”고 2011년 4월 캐나다판 리더스다이제스트와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대학에서는 애초 영문학과 수학에 관심을 보였으나, 캐나다 출신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를 듣고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학창 시절 그는 항상 돈 걱정을 할 정도로 경제적 문제에 민감했다.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성적이 떨어져 장학금이 끊길까 전전긍긍했고, 방학마다 동기들은 유럽으로 여행을 다니는 분위기 속에서 고향집으로 돌아가 지역 병원 조경사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그만의 예민한 재정 감각 덕택에 졸업 후 진로도 우선 돈을 벌어들인 뒤 학업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카니는 “몇년간 일하고 그걸로 학비를 충당하는 방법이 좋을 거라고 여겼다”며 당시 그는 상당한 금액의 대출금이 있었으나 훗날 깨끗이 갚았다고 덧붙였다. 바람대로 카니는 1988년 대학 졸업 후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에서 일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다이아나 폭스 여사와 함께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고 있다. [AP]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다이아나 폭스 여사와 함께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고 있다. [AP]

하지만 양친이 걸었던 학업의 길을 꿈꾸던 그는 1991년 영국 옥스포드대 대학원에 진학해 1993년 경제학 석사학위, 199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던 1994년에는 역시 옥스퍼드대에서 공부 중이던 현재의 아내 다이애나 폭스와 결혼해 현재 슬하에 네 딸을 두고 있다.

석사논문 제목은 ‘경쟁적 우위와 경쟁의 우위: 국가 챔피언, 행동별 학습 및 파급 효과에 대한 이론적 분석’, 박사논문 제목은 ‘경쟁의 역동적 우위’였다. 학업을 마친 카니는 다시 골드만삭스로 복귀해 미국 보스턴과 뉴욕, 캐나다 토론토 등을 오가며 2003년 캐나다 중앙은행 부총재로 발탁될 때까지 금융권 커리어를 이어갔다.

캐나다 중앙은행 부총재로 공직 입문…수백만달러 연봉 포기 “기회라 생각”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로이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로이터]

데이비드 닷지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은행 경험이 전무한 카니를 발탁한 뒤 지인들에게 “방금 내 후계자를 뽑았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카니에게 캐나다 중앙은행 부총재란 기존에 받던 연간 수백만달러의 연봉을 포기하고 40만달러 이하의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카니는 오히려 그 자리가 자신이 평생 기다리며 준비한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카니는 “나는 아버지로부터 교육과 고된 일의 가치를 배웠다”며 “그러한 가치는 공직자가 되어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공직자로서 위기 극복 능력을 검증할 기회는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왔다.

안일한 마음가짐은 ‘금융의 적’

마크 카니

2007년 가을께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8년 2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한 카니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됐다. 다른 중앙은행 직원들과 달리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배경은 투자은행 업계가 고안한 복잡한 금융체계로 초래된 금융위기 대응에 주효한 역할을 했다.

카니는 내부자 관점에서 이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해 캐나다 정부의 위기 대책 마련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니는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제 상을 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며 ‘안일한 마음가짐은 금융의 적’이라는 자신의 인생 격언이 금융 위기를 돌파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금융 위기로 시중에 자금줄이 마르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 지원 대책을 내놓고, 중앙은행을 통해 대출자금 규모를 확대했다. 또한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이자율을 낮추고 역대급으로 낮은 이자율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거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시장에 전했다.

마크 카니 신임 캐나다 총리가 총리가 되기 전인 지난 1월 16일(현지시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앨버타주 에드먼턴을 방문해 자유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
마크 카니 신임 캐나다 총리가 총리가 되기 전인 지난 1월 16일(현지시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앨버타주 에드먼턴을 방문해 자유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

카니는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의 금융 위기 대처법은 캐나다만의 특유한 방식이었다”며 “경제적 기초 체질을 바탕으로 대응에 나서 캐나다 금융권은 세계 어느 은행들보다도 높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또한 사실 그러한 대응은 자신의 결정뿐만 아니라 그가 중앙은행 총재가 되기 전부터 수십년간 캐나다 금융권에 정착된 노하우의 일부였지만, 훗날 해외 전문가들은 금융 위기가 캐나다만 빗겨갔다며 그의 역할에 관심을 보였다.

그 여파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카니를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목록에 포함시켰다. 당시 타임은 “보통 중앙은행 종사자들은 젊거나, 잘생기거나 매력적인 경우가 별로 없다”면서 “그런데 마크 카니는 세 가지 모두에 해당되고 매우 스마트하기까지 하다”고 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적절 대응, 세계적 인물로 주목…대학 친구들 “훗날 총리될 것” 예언

캐나다 TD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 경제 전문가 던 드러먼드는 카니 총재가 크게 주목받은 이유에 대해 “카니는 캐나다 중앙은행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분명히 했다. 그것이 과거 중앙은행이 하던 행태와 크게 달랐다”며 “과거에는 중앙은행이 대중을 상대로 성명을 발표한 적이 거의 없다. 카니는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대중에게 명확히 알렸다. 전에 없던 일을 실행해 자신의 업무 차원을 한 단계 높인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난 17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영국 다우닝 10번가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EPA]
지난 17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영국 다우닝 10번가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EPA]

카니를 수십년간 알고 지낸 지인 중에 “카니가 캐나다 총리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이가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카니의 재학 시절 하버드대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피터 치아렐리는 캐나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를 거쳐 북미 아이스하키 프로리그(NHL)의 여러 팀 감독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의 부친인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가 하버드대 동문으로서 학교를 방문했을 때 카니와 함께 만났던 기억을 공유했다. 치아렐리는 “카니는 (피에르) 트뤼도와 같은 리더로서의 위트와 매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자신감이 충만한 그는 목표로 설정한 것은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2011년 언론 인터뷰에서도 “나는 카니를 만난 뒤 친구들에게 ‘쟤는 나중에 총리가 될거야’라고 말했다”면서 “매년 나는 카니를 만나 이 이야기로 괴롭힌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결국 총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찰스 3세 국왕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지난 17일 런던 버킹엄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AP]
영국 찰스 3세 국왕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지난 17일 런던 버킹엄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AP]

마크 카니 총리는 지난 17일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을 방문,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예방하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했다. 미국 방송 CNN은 카니 총리의 유럽 순방에 대해 “캐나다 지도자로서 첫 외국 순방지로 미국이 아닌 유럽을 택해 전통을 깼다”며 “프랑스와 영국에서 환대받았는데, 캐나다 남쪽 이웃(미국)과 관계와는 극명히 대비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찰스 3세는 버킹엄궁전에서 카니 총리와 악수한 뒤 자리로 안내하며 “다시 만나 대단히 기쁘다”고 말했다. 카니 총리가 영란은행 총재 시절 왕세자였던 찰스 3세를 여러 차례 만난 인연을 거론한 것이다. 당시 영국은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영란은행 총재로 데려오기 위해 전임자 3배 수준의 연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에서는 스타머 총리와 회담했다. 카니 총리는 캐나다와 영국이 “공유된 가치 위에 세워졌다”며 “우리는 세계가 재조직되는 역사의 한 순간에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날 취재진에게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병합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무례한 발언을 중단해야 양국 관계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며 캐나다의 자존심을 드러냈다.

카니 총리는 지난 19일 호주로부터 60억 캐나다달러(약 6조원) 규모의 초지평선 레이더 시스템을 도입해 북극에서 공중 및 해상 위협을 더 빠르고 더 멀리서 감지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를 미국의 일부로 병합하고 그린란드 등 북극권까지 장악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구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조치다.

마크 카니가 걸어온 길
마크 카니가 걸어온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