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등 국회 찾아 성명서 발표

“상법개정안, 법체계 훼손·남소 유발…위헌 소지”

“기업 혁신의지 저해하고 성장 생태계도 훼손”

“자본시장법 개정 통한 핀셋 개선이 바람직”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왼쪽에서 다섯번째) 을 비롯한 경제8단체 임원들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왼쪽에서 다섯번째) 을 비롯한 경제8단체 임원들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경제계가 지난 13일 상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는 게 핵심이다. 경제계는 이 개정안이 기업의 투자·혁신 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결코 시행되서는 안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8단체(대한상의·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는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개정안의 법리적·경제적 문제점은 크게 ▷법체계 훼손 및 남소 유발 ▷위헌 소지 ▷기업의 혁신의지 저해 ▷기업성장생태계 훼손 등 ▷전자주총 도입 등 5가지라고 설명했다.

우선 이번 개정안은 이사와 회사의 위임관계에 기반한 회사법의 근간을 훼손해 경제계는 물론 대다수 상법학자들도 법리적 문제를 지적해왔다고 강조했다. 주요국도 이사 충실의무를 회사로 한정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 우려도 크단 컷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개정안은 ‘총주주 이익’ 등의 모호한 표현을 담아 특히 주주 간 이익충돌상황에서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결국 관련 판례가 정립될 때까지 투자자와의 분쟁과 소송을 유발해 기업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주주 보호의 의미를 담은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과 개별적 주주보호 수단이 마련돼 있다는 점도 부연했다. 즉,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도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 ‘기본법’인 상법 개정으로 모든 기업에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 제37조의 ‘과잉금지 원칙’에 저촉될 우려가 있단 설명이다. 이런 조항은 이사들이 채권자, 종업원, 협력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보다 주주 이익만 우선시하게 만들어 헌법 제119조가 보장하는 ‘다양한 경제주체간의 조화’ 원칙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고 했다.

기업의 성장도 발목 잡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제적 사업재편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혁신이 필요한데, 모든 주주를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혁신 의지를 꺾는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전체 기업의 99.9%, 상장사의 86.5%를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데, 이번 상법 개정안은 주로 중견·중소기업의 성장기회를 제한해 기업성장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 분쟁공시가 2020년 216건에서 2024년 315건으로 증가한 가운데, 작년 경영권 분쟁을 경험한 87개 상장사 중 중견·중소기업이 81곳으로 전체 분쟁의 93%를 차지했다.

한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
한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

‘전자주주총회 의무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개정안은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의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했다. 이들 단체는 일부 상장사의 경우 주주 수가 수백만명에 달하며, 안정적으로 동시 접속 가능한 전자주총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시스템 오류나 보안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국에서도 입법례가 없는 만큼 입법에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 8단체는 “자본시장 발전의 필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하며, 주주권익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다만 문제소지가 있는 부분은 상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핀셋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의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높고 산업 활력이 저하된 현 시점에서, 기업의 혁신성장을 저해하며 위헌성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금번 상법 개정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며 “대통령 권한대행님의 재의요구를 통해 국회가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신중히 검토할 기회가 마련되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ke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