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가보니
유동인구 많지만 매출 연계 안돼
경기악화로 상가해지율 지속상승
“年 3000만원 가겟세 부담” 토로
전문가 “업종별 임대료 차등 필요”
“유동 인구는 많은데 정작 들어와서 구경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전 품목 2900원 판매, 50% 할인 등 파격 세일 조건으로 원가에 한참 못 미치게 판매하고 있는데도 하루에 티셔츠 한두 장 팔기도 힘듭니다. 오전·오후 반나절만 장사하고 일찍 퇴근하는 점포가 대다수고, 임대를 내놓을까 고민하는 점포들이 수두룩합니다” (고투몰 여성의류 판매점 상인 A씨)
지난 19일 오후 방문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고속터미널역(3호선·7호선·9호선) 지하상가 ‘고투몰’에는 평일 오후 시간대라 유동인구가 많았다. 하지만 3호선과 9호선 환승을 위해 지나가야 하는 고투몰은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양 옆으로 펼쳐진 점포에 들어가거나 구경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후 서너시에 셔터를 내리고 이미 퇴근하거나, 비정기적 휴무로 아예 출근을 하지 않은 점포도 있어서 마치 한밤 같았다.
세일·재고정리 문구는 안 붙은 상점이 없었고, ‘전 품목 파격 세일’·‘점 품목 균일가 할인’ 등의 파격 할인 조건을 내건 곳도 많았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파격 세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잡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B씨는 “한 켤레에 2만원도 안 하는 신발을 50%까지 할인해 판매하면 실제 받는 금액은 몇천원대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야지만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그나마 관심을 보이고, 하루에 몇켤레를 팔아도 연간 3000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는 버겁다”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하상가의 계약 해지율은 15.9%로, 2022년 13.3%와 2023년 15.6%를 기록한 데 이어서 또다시 올랐다. 경기 악화로 계약 해지율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체 상가 공실률은 6.9%로 지하철 상가 업종 다양화·무인 점포 증가 등으로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의 30%대 공실률에 비해 개선됐지만, 여전히 임대료 문제 등으로 장사에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이 점포를 내놓거나 장기 휴무에 돌입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고속터미널처럼 서울 도심 내에서도 유동인구가 많고 규모가 큰 지하상가는 임대료·권리금과 같은 대부료가 크기 때문에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지하철 상가의 1㎡당 임대료는 9만4000원으로,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의 7만5000원을 웃돈다. 역 출입구 앞이나 환승게이트 근처에 있는 흔히 말하는 ‘명당자리’에는 권리금 규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투몰 지하상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고터 환승구역 휴게실 광장 쪽은 대부분 권리금 1억원~1억500만원 수준”이라며 “입지와 면적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이곳의 월세 관리비 평균 지출은 350만~750만원 정도로 지상상가와 비교해도 비싼 편”이라고 했다. 실제 20일 기준으로 고속터미널역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지상상가 전용 26㎡는 보증금 2000만원·월세 200만원 수준에 나와 있었다.
상인들은 큰 지출대비 영업이익이 갈수록 적어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상가임대료 연체 요율 인하 ▷상가 업종전환 규제 완화 ▷다수 상가 일괄임대차 계약 시 부분 해지 허용 등의 내용 담은 ‘지하철 상가 운영규제 개선안’을 5월부터 시행 예정이지만 상인들은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가격을 비싸게 받자니 품질이 떨어지고, 싸게 받으면 이윤이 안 나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고투몰에서 침구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C씨는 “판매 상품은 저렴한데 손님이 줄어 매출은 적다. 전에는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왔는데 이제는 오지 않는다”며 “경기는 나빠지는데 5년 지나 재계약할 때마다 임대료 시세는 올라가 갈수록 장사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 임대료 인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이곳 상인들의 규탄 성명서도 지하상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2년 전 재계약 당시 그 전 계약에 비해 임대료가 46% 올린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고투몰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은 공식 집계된 공실은 없지만 임시 휴점에 돌입하거나 ‘전대’ 개념으로 가게를 넘기거나 새로운 임차인을 상정할 때 장기간 영업을 중단하는 점포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임대료 인상과 관련, “주변 상권 임대료와 비교해 감정평가 법인 기업에서 가격을 산정한다”며 “지하철 역 상가의 경우 보통 5년 단위로 감정평가와 재계약을 진행하는데, 고속터미널의 경우 2년 전 임대료 산정이 약 13년만에 이뤄져 큰 시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다. 개·보수를 담당하는 조건부 수탁 회사인 고투몰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조건으로 10년동안 운영하며 상인들에게 대부료를 받기로 했고, 이에 공사시간 2년 8개월을 더해 2023년까지 약 13년동안 같은 임대료로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선종필 상가 뉴스레이다 대표는 “장기 임대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하상가의 임대료 시세 평가 시 원래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 재평가 금액이 5년 전에 비해 급등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며 “지하철역 내에서도 입지와 업종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입찰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를 등급제로 운영해 재계약시 자유롭게 자리를 바꾸고 업종별로 임대료도 다르게 내도록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주원 기자
jookapooka@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