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송대관 눈물의 영결식
“따뜻한 미소 기억할 것”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에서 태진아가 헌화하고 있다. [연합]](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9/rcv.YNA.20250209.PYH2025020903140001300_P1.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겨울 햇살이 화창하던 날, 50여년의 긴 세월 동안 희망을 노래하던 고(故) 송대관이 떠났다.
9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유족과 동료 70여명이 참석한 영결식은 고인을 향한 묵념과 배우 겸 가수 김성환의 약력 소개로 시작됐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조사를 통해 고인의 히트곡인 ‘네박자’의 제목을 고인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네박자’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특히 정이 가고 노래에 한몫했다고 생각해 행복했다”며 “우리 후배들은 선배님의 유머 있는 모습과 따뜻한 미소와 주옥같은 노래들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과는 가요계의 대표 라이벌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가수 태진아는 “형님은 항상 저에게 멘토였다. ‘형 가는 길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길래 정말 따라갔다”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 가서 사시면 제가 방송하는 것도 큰 재미가 없을 것 같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치매를 앓는 제 아내가 대관이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대관이 형이 그만큼 우리하고 가깝게 지냈으니 기억해주는구나 싶었다”며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인사했다.
![가수 송대관의 유가족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2/09/rcv.YNA.20250209.PYH2025020903050001300_P1.jpg)
송대관 태진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함 시대를 풍미한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 형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늘 긍정을 노래하며 서민들을 위로하던 가수답게 그의 영결식의 조가는 ‘해뜰날’이었다. 태진아 설운도를 비롯한 동료들이 함께 이 곡을 불렀고, 김수찬은 고인의 성대모사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안겼다.
송대관은 지난 7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장례 기간 태진아, 설운도, 하춘화, 현숙, 김흥국 등 동료 가수와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빈소를 찾아 고인이 가는 길을 함께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 의원은 고인이 1980년대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로 지낸 박지원 의원은 “송대관 씨는 저와 형제처럼 지내며 제가 어려울 때, 필요할 때 늘 도움을 줬다”며 “훌륭한 가수가 너무 빨리 가서 애석함이 끝이 없다. 좋은 나라로 가셨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가수 강진은 “송대관 선배는 이웃집 형님처럼 편하고 친근한 가수였다”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아 달려왔는데 이제 아프지 마시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춘화는 “아직 젊으신데 갑자기 이런 일을 겪으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며 “굉장히 마음이 허전하고 가요계가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해뜰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로 희망을 안겼다. 1990년대엔 태진아, 설운도, 고(故)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도 불리며 트로트 장르 확산에 기여했다.
고인은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