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서상범 기자]80년대 후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TVN ‘응답하라 1988’. 다양한 캐릭터의 조화는 물론, 가족이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기자다보니, 다른 것보다 눈에 띈 것은 역시 극 중 등장하는 자동차였습니다. 성 씨네 집안 첫째딸 보라(류혜영)가 빌린 대학 선배의 차로 등장한 대우자동차의 르망.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어남열)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던 정환(류준열)의 애마로 나온 쌍용자동차 코란도 등 추억을 자극하는 차량들이 대거 등장했는데요.
TVN 응답하라 1988 캡쳐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기아차의 프라이드였습니다. 극중 정봉(안재환)과 정환의 아버지로 나왔던 성균(김성균)이 자신의, 그리고 가족의 두번째 차로 선택했던 모델이었죠.
이 차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균이 현대차 포니에 이은 두번째 패밀리 카로 선택했던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랜저나 쏘나타를 기대했던 가족의 기대를 무참히(?) 버렸죠.
드라마에서 성균의 가족은 전형적인 성공한 중산층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정봉의 복권 당첨으로 신분 상승을 하긴 했지만요. 이런 그들의 첫 차는 당시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현대차의 포니였습니다.
자가차량이 드물었던 그 시대, 포니는 성균 가족의 부유함을 보여주는 극 중 장치였죠.
당연히 그들의 생활 수준에 비춰보면 다음 차는 쏘나타나 당시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그랜저가 됐어야 합니다.
특히 현재까지 국민 중형차로 사랑받아온 쏘나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Y2쏘나타가 1988년에 출시됐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쏘나타의 자연스러운 등장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1세대 쏘나타는 1985년 스텔라를 기반으로 출시됐지만 시장의 반응을 얻는데는 실패했고, 현대차 측은 Y2 쏘나타를 진정한 첫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미란(라미란) 여사가 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줬던 상황에 비춰도 위의 두 차량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하지만 성균은 이런 가족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한껏 기대에 부푼 가족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새빨간 색깔의 프라이드였죠. 그것도 중고였습니다.
“남자라면 프라이드 아니가?”라는 말을 외치며 호기롭게 시승을 권하는 성균에게 아내 미란은 싸늘한 한 마디를 던집니다. “너나 실컷 타”
미란의 싸늘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프라이드가 등장한 에피소드는 10화로 1989년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당시 최고의 차이자 미란이 기대했던 그랜저 1세대(일명 각그랜저)의 가격은 1690만원(신차, 2.0 리터 모델)이었습니다. 성균에게 건넸던 2000만원이면 310만원이 남는 돈이었죠.
여기에 Y2 쏘나타는 (신차, 2.0 자동변속기 기준) 1206만원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균이 가져온 프라이드 1세대는 최하급인 3도어, 1.1리터 모델이었습니다. 그것도 중고였으니 당시 가격으로 300만원이면 충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성균의 차량을 1991년에 출시된 프라이드 팝(프라이드의 저가형 모델)이라고 추정하는데, 이는 10화가 1989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성균은 왜 프라이드를 선택했던 것일까요? 드라마의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그 답을 직접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유추를 해보자면 먼저 성균의 지독한 짠돌이 성격 때문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물건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균의 성격상 1000만원이 넘는 쏘나타와 그랜저는 언감생심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추정이 가는 대목은 바로 프라이드가 가진 상징성입니다. 미국 포드, 일본 마쓰다와 기아자동차가 공동으로 제작한 프라이드는 가벼운 차체와 뛰어난 출력으로 인해 당시 젊은 세대에게 핫(HOT)한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앞바퀴 굴림방식에 맥퍼슨 스트럿이 적용된 전륜 서스펜션은 뛰어난 주행감을 자랑하며 당시 소형차 시장을 선도해나갔죠. 여기에 해치백이라는 실용성까지 겸비한 말 그대로 실속있는 차였습니다.
단단한 내구성으로 잔고장이 없었던 것도 매력 요소 중 하나였죠.
여기에 영어로 자존심(PRIDE)라는 뜻의 이 차를 통해 아내에게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잡혀살던 성균의 소심한 반항이 아니냐는 짐작도 해봅니다. 여러가지 색 중에서 열정을 상징하는 빨간색 차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TVN 응답하라 1988 캡쳐
이처럼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성균이 자신에게 건네는 최고의 선물, 프라이드는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모델입니다.3세대를 거쳐 올해 하반기 4세대가 출시될 예정인 프라이드의 누적판매량은 약 200만대에 달합니다.
특히 올드카를 사랑하는 이들 중에는 아버지가 탔던 1세대 프라이드를 물려받아 정성스럽게 운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시각에서도 멋스러운 프라이드 1세대가 더욱 많이 우리 곁을 지켰으면 합니다.
